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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레전드 - 제프 켄트<2019 MLB 포스트 시즌 일정>

야구상식

by jungguard 2019. 10. 1.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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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켄트와 배리본즈

 

제프리 프랭클린 켄트 (Jeffrey Franklin Kent)

생년월일 : 196837

국적 : 미국, 출신지 : 캘리포니아주 벨플라워. 출신고교 : Edison HS (Huntington Beach, CA). 출신대학 : UC버클리

포지션 : 2루수. 투타 :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9년 드래프트 20라운드 전체 523순위

소속팀

토론토 블루제이스(1992)

뉴욕 메츠(1992~1996)

클리블랜드 인디언스(1996)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1997~2002)

휴스턴 애스트로스(2003~2004)

로스앤젤레스 다저스(2005~2008)

 

수상경력

All-Star 5(19992001, 200405)

Silver Slugger 4(20002002, 2005)

National League MVP 1(2000)

National League MVP투표 6(2002)

National League MVP투표 8(1997)

National League MVP투표 9(1998)

타점왕 5(1997, 1998, 2000, 2002)

2루수 통산홈런 1(351)

2루수로서 6시즌 연속 100타점 이상 (19972002, 메이저리그 유일)

Hit for the cycle (1999)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전 야구선수로 메이저리그 2루수로써는 보기 드물게 장타형 타자 중 하나. 통산 성적은 17시즌 동안 타율 .290, 출루율 .356, 장타율 .500, OPS .856, 순장타율 .210, 2461안타, 377홈런, 1518타점, BB/K 0.52, wRC+ 123을 기록했다.

 

메이저리그 역대 2루수 중 가장 많은 홈런을 때려냈고 2루수로서 커리어를 마감한 야수 중에서 장타율이 .500 이상인 몇 안되는 선수이다. 다른 한명은 1920년대를 지배한 전설적인 2루수인 로저스 혼스비.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선수와 비교된 것만으로도 그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자이언츠 팬들은 사랑하던 윌리엄스를 떠나보내는 것은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 했지만 그 대가가 켄트와 떨거지들이라는 사실에 분노했다. '신임 단장 브라이언 세이빈이 트레이드를 성사시키고 비공식적으로 100만달러를 건네받았다'라는 소문이 돌았다. 세이빈은 연일 공세를 퍼붓는 팬들과 지역언론을 잠재우기 위해 비공식 기자회견을 요청하였는데 이 기자회견은 "I am not an idiot."(나는 바보가 아닙니다.)란 말로 유명해졌다.

 

세이빈은 새 구장 건축을 위해 맷 윌리엄스를 내보내야만 했었고, 신인 유격수 리치 오릴리아, 3루수 빌 뮬러, 그리고 윌리엄스 트레이드로 데려온 선수들이 가세함으로서 팀이 더 좋은 성적을 올릴 것이라고 호소하였다. 아울러 바비 보니야를 영입하여 배리 본즈와 함께 킬러B를 재결성 시킬 것이란 계획도 밝혔다.결국 그런 영입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켄트는 배리 본즈를 만나게 되고 당시 전성기였던 골드글러버 1루수 J.T. 스노우와 함께 클린업을 이룬다. 본즈와 스노우가 좌타자였으므로 주로 4번 타석에 들어섰다. 3번 본즈, 4번 켄트, 5번 스노우. 그리고 자이언츠에 맞은 첫시즌, 더스티 베이커 감독의 전폭적 지지하에 155경기 출장 .250 .316 .472 29홈런 121타점으로 홈런-타점에서 커리어 하이를 찍더니,

 

1998년 재능이 드디어 만개하면서 리그 최고 타자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시즌 성적은 타율 .297, 출루율 .359, 장타율 .555, 31홈런과 128타점! 2000년에는 본즈를 제치고 리그 MVP를 수상하며 자신이 본즈의 조력자가 아닌, 그와 경쟁할 만한 선수임을 알리게 된다. 159게임을 출장해 타율 .334, 출루율 .424, 장타율 .596, OPS 1.021, 33홈런, 196안타, 125타점이라는 아름다운 스탯을 찍었고, 거기에 0.986의 수비율로 수비까지 원숙해지며 최고의 야수가 되었다. 특히 타점 생산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는데, 아메리칸리그에 후안 곤잘레스가 있다면 내셔널리그에선 제프 켄트가 타점 머신이었다. 자이언츠에서의 6년간 매시즌 100타점을 돌파했으며, 도합 689타점을 기록, 2루수의 한계을 파괴했다.(6시즌 연속 100타점 2루수는 유일무이) 본즈와 켄트는 순망치한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타석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였다. 켄트는 3번타순에서 허구한 날 출루하던 배리 본즈의 우산효과를 톡톡히 보았고, 본즈는 뒤에 켄트가 버티고 있는 덕분에 투수들이 함부로 자신을 피하지 못하였다.

 

켄트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2002년까지 뛰면서 1번의 MVP3번의 실버 슬러거 수상, 3번의 올스타전 출장을 하게 된다.Willie Mac Award 1회 추가 켄트가 합류하기 전 70승도 넘기기 힘들었던 자이언츠는 켄트&본즈 결성 후 내셔널리그 서부지구의 강호로 다시 올라섰으며 매해 90승이상을 올리며 포스트시즌의 단골이 되었다. 2002년도엔 월드 시리즈까지 올라 애너하임 에인절스를 상대로 우승을 목전에 두었지만 7차전까지 가는 접전끝에 아쉽게 역전패하고 만다. 켄트 커리어에선 이 순간이 우승에 가장 가까웠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경기 외적으로 켄트와 본즈의 사이는 물과 기름처럼 사이가 정말로 안 좋았다. 드래프트 1라운더, 야구선수 집안, 거만한 천재 스타일인 흑인 배리 본즈와 하위라운더로서 밑바닥부터 기어올라온 백인 우월주의자 제프 켄트는 성장배경부터 성격까지 서로 어울릴 수 없는 사이였다. 어느 정도로 사이가 안 좋았냐면 둘이 더그아웃에서 난투극을 벌이던 장면이 중계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2002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계약이 만료된 후 샌프란시스코는 켄트와의 재계약을 포기하게 된다. 이는 상기된 '손목 부상 사건'이 직간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샌프란시스코 생활을 청산하게 된 켄트는 자신의 텍사스 농장에서 가까운 팀인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21,900만 달러(2005년 팀옵션 900) 계약을 맺고 네번째 팀에서의 커리어를 시작하였다.

 

애스트로스의 레전드 크레이그 비지오는 켄트가 오게되면 자신의 포지션이었던 2루를 기꺼이 내어줄 수 있다 하였고 실제로도 실천하였다. 이 정도로 애스트로스는 우승에 올인한 상황이었다. 켄트는 자이언츠시절보다 조금 떨어진 성적이긴 했어도 2년간 OPS 8할대 후반과 200타점을 쏟아내며 비지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타선의 이름값이 높았지만 가장 기여가 높은 선수는 켄트(와 랜스 버크먼)라고 할 수 있었다. 2004102일엔 2루수로서 통산 288번째 홈런을 쳐내며 라인 샌드버그를 넘어선 올타임 리더가 되는 기쁨을 맛보았다.오오 그해 가을, 켄트와 애스트로스는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진출까지 이뤄냈지만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게 아쉽게 패하며 또 한번 우승에 실패했다. 애스트로스 구단은 2005년 팀 옵션으로 걸려있던 900만 달러를 포기하고 연봉삭감을 전제 조건으로 재계약 협상에 나섰다. 하지만 켄트가 받아들일리가 만무. 아직 잘나가던 젊은 오빠 켄트는 자신의 고향팀 LA 다저스와 32100만달러의 계약을 보란듯이 채결했다.

 

'예전보다 수비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다저스에선 1루나 3루로 갈 것이다', '극악의 투수구장 다저 스타디움을 쓰게 된 켄트의 성적이 대폭 하락할 것이다' 등 말이 많았지만 결과는 그런 거 없다. 파크펙터와 나이 따위는 발라버리는 대활약을 펼치며 다저스 입단 첫해 29홈런 105타점을 쏟아내며 OPS .889를 찍었다. 켄트에 이은 팀내 홈런2위가 15개의 최희섭이었을 정도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382루수가 팀 타선의 리더가 되는 진귀한 광경을 만들어냈다. 참고로 이 성적은 재키 로빈슨 이후 다저스 2루수로는 최고의 성적이었다.

 

이듬해인 2006년에는 복사근 부상으로 시즌 초반을 결장하며 407타석밖에 소화하지 못했지만, 타율 .29214홈런을 기록하며 여전히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2007년엔 다시 건강한 시즌을 보내며 .320의 고타율에 20홈런 79타점으로 러셀 마틴, 맷 켐프, 안드레 이디어, 제임스 로니 등의 젊은 타자들을 이끌었다. 켄트의 기량이 남아있음을 확인한 다저스는 11150만 달러에 켄트와 재계약하였다. 하지만 천하의 켄트도 41세가 되자 힘에 부쳤는지 타율 .280, 12홈런 59타점을 기록하며 한물간 모습을 보였다. 결국 다저스는 연장계약을 제시하지 않았고 켄트는 다시 FA시장에 나왔다.

 

수비 부담을 없애고 지명타자로 뛴다면 더 활약할 수 있다는것이 대부분의 예상이었으나, 켄트는 해를 넘기도록 어느 팀과도 계약하지 않았고 결국 2009122"가족과 더 오랜시간을 보내고 싶다"라고 말하며 은퇴를 선언했다.

 

중간에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끼기는 했지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꽃피운 선수가 불구대천의 라이벌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로 이적했기 때문에 당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팬덤 사이에선 배신자 취급을 받기도 했다.

 

타격성적만 따져보면 통산 타율이 3할도 안되고, 400홈런도 못 때렸으며, 3천안타는 고사하고 2500안타도 못 쳐냈지만 이 양반이 은퇴할 때까지 2루수를 지켰다는 사실을 감안해 보면 명예의 전당에 충분히 들어갈 자격이 있다. 특히 명예의 전당은 포지션별로 입성한 선수들의 누적스탯 편차가 굉장히 큰 편인데, 심지어 수비부담이 큰 유격수의 경우는 OPS 7할도 못넘은 타자도 간판급 수비 하나만으로 명전을 간다. 게다가 켄트의 누적스탯에서 홈런과 타점은 2루수로서 역대 최고수준으로, 100년이 넘는 MLB에서 2루수 중 가장 많은 홈런을 때려냈고 은퇴 시점에서 로저스 혼스비와 더불어 통산 장타율이 5할을 넘어가는 유이한 2루수에 약물혐의에서도 자유로운 청정타자다. 공개적으로 성장호르몬 복용자 적발을 위한 MLB 선수 대상 혈액검사를 지지하기도 했을 정도. 때문에 켄트가 은퇴했을 때 몇수만에 몇퍼센트의 확률로 입성하느냐에 주목하는 사람이 많았지 입성 자체를 걱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그가 은퇴하는 시점이 그렉 매덕스, 랜디 존슨, 페드로 마르티네즈, 마이크 무시나, 프랭크 토마스, 톰 글래빈 같은 굇수들의 은퇴시기와 겹치는 바람에 시간은 좀 걸려도 언젠가 입성하겠지하고 생각했다.

 

명예의 전당 투표결과는 2015년도에도 작년과 별 차이없는 14%의 득표율을 보였고, 2016년도 득표율은 16.6%로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쳤다. 이제 3번째 투표이기에 좀 더 지켜볼 필요는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입성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성적과는 다르게, 켄트는 팀원이나 구단과도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던 데다가 백인우월주의론자로 찍혀서 밉보임을 받았는데, 문제는 언론과의 관계 역시 최악이었다는 것. 이 점이 명예의 전당을 가기 어렵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 중이다.

2017년에는 16.7%, 2018년에는 14.5%를 길기록하며 10%대에서 계속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이대로라면 입성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는 상황. 2019년 역시 18.1%에 그쳤다.

 

<2019 MLB 포스트시즌 일정>

NL : 다저스는 와일드카드 결정전(워싱턴 내셔널스 - 밀워키 브루어스 - 2일)승자와 4일부터 NL 디비전시리즈(5전3선승제)를 벌인다. 이날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또 다른 디비전시리즈를 시작한다.

AL : 탬파베이 레이스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3일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른다. 승자는 올해 최다승 팀인 휴스턴 애스트로스(107승55패)와 5일부터 디비전시리즈에서 만난다. 같은날 뉴욕 양키스 - 미네소타 트윈스의 디비전시리즈도 막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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