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드센스

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MLB NL에서 AL 간 선발투수들(12.30)- 전문가 칼럼

야구상식

by jungguard 2019. 12. 30. 12:00

본문

728x90

페드로-라몬 마르티네스 형제

 

NL 서부에서 AL 동부로 간 선발투수

 

이제는 아메리칸리그다.

 

2013년 이후 다저스 유니폼만 입었던 류현진(32)이 토론토로 이적했다. 리그 이동뿐만 아니라 투수에게 가장 힘든 동부지구로 진출한다. 양키스와 보스턴이 모여 있는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는 투수에게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 곳이다.

 

실제로 양키스는 올해 경기당 평균 득점에서 메이저리그 전체 1위를 차지했다(5.82). 보스턴은 5.56점으로 전체 4위였다. 지명타자를 두고 있는 아메리칸리그는 리그 평균 득점이 내셔널리그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최근 5년간 리그별 경기당 평균 득점

 

2015 [AL] 4.39 [NL] 4.11

 

2016 [AL] 4.52 [NL] 4.44

 

2017 [AL] 4.71 [NL] 4.58

 

2018 [AL] 4.53 [NL] 4.37

 

2019 [AL] 4.88 [NL] 4.78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와 내셔널리그 서부지구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르다. 전력의 우위를 논하기보다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내셔널리그 서부지구가 투수력을 좀더 중시한다면,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는 타격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타자를 중심으로 하는 구장들이 제작됐고, 자연스레 뛰어난 성적을 거둔 타자들도 많았다. 서부에 비하면 분위기도 열광적인데, 이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한 투수들이 부지기수였다. 류현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셔널리그 서부지구에서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로 넘어간 선발투수들은 어떤 모습을 보였을까. 애리조나와 탬파베이가 창단한 1998년 이후 주목할만한 선발투수 이동을 살펴봤다(경기 수는 선발)

 

 

1999년 라몬 마르티네스 (다저스보스턴)

 

: 15G 732.83 (bWAR 2.1 fWAR 1.9)

 

:04G 213.05 (bWAR 0.7 fWAR 0.3)

1990-97년 다저스에서 109673.50을 기록한 라몬 마르티네스(사진)1998시즌 역시 첫 15경기에서 순항했다(732.83). 하지만 7월에 어깨 회전근개 수술을 받으면서 커리어에 위기가 찾아왔다. 다저스는 이듬해 마르티네스에게 아무 제안도 하지 않았다. 구원의 손길을 내민 팀은 보스턴이었다. 댄 듀켓 단장은 마르티네스에게 2700만 달러 계약을 안겨줬다(1999200, 2000500). 1998년 먼저 보스턴으로 넘어온 동생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가장 기뻐했다. 보스턴은 마르티네스가 7월이면 공을 던질 몸상태가 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마르티네스는 9월이 되어서야 돌아왔고, 본무대인 2000년에는 더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27경기 1086.13). 한편 형의 동력이 다하는 동안 페드로 마르티네스는 1999-2000년 사이영상 2연패를 달성했다.

 

2003년 릭 헬링 (애리조나볼티모어)

 

: 30G 10124.51 (bWAR 2.0 fWAR 1.5)

 

: 24G 07085.71 (bWAR 0.4 fWAR 0.2)

 

헬링은 1998년 텍사스에서 20승을 따낸 투수. 1974년 퍼기 젠킨스(25) 1992년 케빈 브라운(21)에 이은 텍사스 역대 3번째로, 이후 텍사스는 20승 투수가 나오지 않고 있다. 1998-2001년 연속 두 자리 승수를 올린 헬링은 2002년 애리조나로 건너와 또 한 번의 10승 시즌을 추가한다. 당시 헬링과 더불어 두 자리 승수를 거둔 애리조나 투수는 랜디 존슨(2452.32)과 커트 실링(2373.23)이었다. 5년 연속 10승과 평균 200이닝이라는 훈장을 달고 시장에 나왔지만, 헬링을 향한 관심은 싸늘했다. 결국 헬링은 개막전 로스터에 들 시 100만 달러를 보장한 볼티모어의 마이너리그 계약을 받아들였다. 시장 평가에 낙담한 헬링은 의욕을 상실했다. 시즌 중반 볼티모어와 인연을 끊고 플로리다와 새로 계약을 맺었다. 헬링은 포스트시즌 4경기 8.2이닝 8실점(7자책)에 그쳤지만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손에 넣었다.

 

2003년 오마 달 (다저스볼티모어)

 

: 23G 11093.90 (bWAR 1.4 fWAR 1.5)

 

: 17G 04116.34 (bWAR -0.8 fWAR 1.3)

 

원래 불펜투수였던 달은 1998년 애리조나에서 선발 경험을 쌓기 시작. 다저스와 재회한 2002년에도 불펜에서 선발로 보직을 변경했다. 달은 시즌이 끝나고 볼티모어와 2750만 달러 계약을 맺었다. 볼티모어는 1998년 지미 키 이후 좌완 풀타임 선발이 없어 고민이었다. 팀의 약점을 해결해 줄 것으로 보였지만, 되려 볼티모어의 흑역사로 남았다. 달은 나올수록 자신감을 잃었고, 급기야 어깨 수술로 이탈했다. 사실 달은 볼티모어와 계약을 한 뒤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다저스에서 불펜 선발 가리지 않고 나오면서 팔이 아팠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티모어는 선발을 희망했던 달의 요구를 들어준 것이다. 달은 그 해 최악의 계약으로 뽑혔다.

 

2004년 시드니 폰손 (샌프란시스코볼티모어)

: 10G 03063.71 (bWAR 1.1 fWAR 0.9)

 

: 33G 11155.30 (bWAR 1.4 fWAR 3.0)

 

볼티모어가 인내심을 가지고 키운 폰손은 2003년 마침내 기대에 부응했다. 21경기에서 1463.77. 그러나 볼티모어와 폰손은 연장 계약 협상 과정에서 관계가 틀어졌다. 폰손은 7월 중순 볼티모어가 31500만 달러를 제안하자 단칼에 거절했다. 볼티모어가 계약 규모를 2100만 달러로 높인 제안도 수락하지 않았다. 결국 볼티모어는 논웨이버 트레이드 마감시한 30분을 남겨두고 폰손을 트레이드 했다. 선수 세 명을 준 샌프란시스코는 폰손이 커크 루터의 부상 공백을 메워주길 바랐다(브라이언 세비언 단장은 제이슨 슈미트를 처음 봤을 때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 이적 후 준수한 성적을 기록한 폰손은 커리어 하이를 찍고 FA가 됐다. 그리고 32250만 달러 계약에 친정팀 볼티모어로 돌아왔다. 서운함이 폭발했던 폰손의 마음을 어르고 달랜 볼티모어는 결과적으로 처음 놓았던 폰손의 손을 다시 잡지 말아야 했다. 이후 폰손은 음주운전 폭행 등 온갖 구설수에 휘말려 볼티모어의 아픈 손가락이 됐다.

 

2004년 미겔 바티스타 (애리조나토론토)

 

: 29G 10093.54 (bWAR 4.3 fWAR 4.3)

 

: 31G 10134.80 (bWAR 2.1 fWAR 1.6)

 

애리조나에서 종횡무진 활약한 바티스타는 31310만 달러 계약으로 토론토에 입단. 2003년 로이 할러데이가 사이영상을 수상한 토론토는 바티스타와 테드 릴리(트레이드)를 데려오면서 상위 선발진을 꾸렸다. 리치아디 단장은 바티스타의 다재다능한 면모를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바티스타는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의 벽을 넘지 못했다. 보스턴(136.68) 양키스(115.09) 볼티모어(310.67)만 만나면 뒷걸음질치기 바빴다. 2003년 애리조나에서 2.79개였던 9이닝당 볼넷 수가 토론토로 온 뒤 4.35개로 크게 증가했다. 96볼넷은 리그 최다 기록. 토론토는 제구 불안에 시달린 바티스타를 다음 시즌부터 불펜으로 돌렸다. 모 아니면 도였던 바티스타는 62경기를 끝내는 동안 31세이브를 올렸다(71경기 4.10).

 

2004년 커트 실링 (애리조나보스턴) *트레이드

 

: 24G 0892.95 (bWAR 6.0 fWAR 5.6)

 

: 32G 2163.26 (bWAR 7.8 fWAR 6.5)

 

애리조나에서 '1선발 같은 2선발'이었던 실링은 200311월 또 한 번 트레이드 대상이 됐다. 애리조나는 보스턴과 합의를 이뤘지만, 실링이 트레이드 거부권을 행사해 난관에 봉착했다(실링은 필라델피아 혹은 양키스행을 원했다). 보스턴은 실링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필라델피아 시절 은사였던 테리 프랑코나를 감독으로 영입했고, 테오 엡스타인 단장이 실링의 집을 찾아 추수감사절을 함께 보냈다. 같은 기간 로저 클레멘스가 은퇴했던(이후 번복) 양키스도 실링에게 관심을 드러낸 터라 실링 영입은 더 치열했다(양키스는 애리조나가 알폰소 소리아노와 닉 존슨을 달라고 하자 한 걸음 물러섰다). 힘들게 영입한 보람은 있었다. 보스턴을 위해 분골쇄신할 것을 밝힌 실링은 2004'통산 3번째' 사이영상 2위에 올랐다. 그리고 보스턴이 양키스를 상대로 리버스 스윕을 만들어낸 챔피언십시리즈에서 핏빛 투혼을 선보였다. 실링은 보스턴에서 밤비노의 저주를 깨뜨리는 등 두 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2004년 케빈 브라운 (다저스양키스) *트레이드

 

: 32G 1492.39 (bWAR 4.5 fWAR 6.1)

 

: 22G 1064.09 (bWAR 2.8 fWAR 2.3)

 

실링을 놓친 양키스는 다른 대안책을 찾아나섰다. 클레멘스와 더불어 팀 최다승 투수 앤디 페티트마저 고향팀 휴스턴에 뺏기면서 투수 보강은 반드시 필요했다. 양키스는 몬트리올 하비에르 바스케스를 데려오기 앞서 브라운을 영입. 최초의 1억 달러 투수였던 브라운은 38세 시즌에도 녹슬지 않은 기량을 뽐냈다. 양키스는 브라운이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서도 경쟁력을 유지할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믿는 도끼에 발등을 제대로 찍혔다. 탬파베이만 연달아 상대한 첫 3경기에서 31.29였던 브라운은 갈수록 밑천이 드러났다. 심지어 스스로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클럽하우스 벽을 주먹으로 쳐 왼손 골절상까지 입었다. 팀 분위기를 뒤숭숭하게 한 브라운은 2004년 포스트시즌에서 완전히 낙인이 찍혔다. 보스턴과 격돌한 챔피언십시리즈 3차전과 7차전 선발로 나와 2이닝 4실점(3자책) 1.1이닝 5실점으로 무너졌다. 특히 7차전에서는 1회부터 오티스에게 투런홈런을 얻어맞았고, 2회 역시 만루 위기를 자초하고 강판됐다(보스턴은 자니 데이먼의 만루홈런으로 초반에 승기를 가져왔다). 2005년에도 476.50(13경기)으로 고개를 숙인 브라운은 양키스의 금지어가 됐다.

 

2005년 데이빗 웰스 (샌디에이고보스턴)

 

: 31G 1283.73 (bWAR 2.6 fWAR 3.1)

 

: 30G 1574.45 (bWAR 3.2 fWAR 3.0)

 

2004년 월드시리즈 우승에 고무된 보스턴은 2005년 또 한 명의 빅게임 피처 웰스를 데리고 왔다(2800). 1992년 토론토와 1998년 양키스에서 우승 청부사였던 웰스는 포스트시즌 통산 25경기(15선발) 1033.18의 준수한 성적을 자랑했다. 웰스의 보스턴 이적은 다소 충격이었다. 웰스가 베이브 루스의 광팬이자 양키스를 사랑한 선수였기 때문이다(루스가 실제로 썼던 모자를 자비로 구입한 웰스는 경기에 직접 쓰고 나오려고 했다). 웰스는 양키스에서 거부당했던 루스의 등번호(3)를 보스턴에서 달았다. 알려진대로 보스턴은 루스의 친정팀이다. 이미 토론토 볼티모어 양키스를 거친 웰스는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서도 42세 나이로 노익장을 과시했다. 그러나 무릎 부상에 빠진 2006년 팀에 트레이드를 자청해 다시 고향 샌디에이고로 돌아갔다. 참고로 당시 웰스의 거취로 입지에 영향을 받은 선수 중 한 명은 바로 박찬호였다.

2005년 랜디 존슨 (애리조나양키스) * 트레이드

 

: 35G 16142.60 (bWAR 8.4 fWAR 9.6)

 

: 34G 17083.79 (bWAR 5.8 fWAR 4.1)

 

동고서저 주장에 힘을 실어준 결정적인 선수. 애리조나에서 4년 연속 사이영상(1999-2002)을 휩쓴 존슨(사진)2004년 사이영상 2위 후 뉴욕에 입성했다. 양키스는 불혹이 지난 존슨에게 23200만 달러 연장 계약으로 자존심을 세워줬다(연봉 1600만 달러는 1900만 달러 무시나에 이은 투수 2위였다). 존슨은 첫 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탈삼진이 줄고 피홈런이 늘어나는 우려스러운 변화가 있었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존슨은 양키스 2년차인 2006년에 성적이 곤두박질쳤다(17115.00). 조정 평균자책점 90은 신인이었던 1989년 이후 최악의 기록. 어느덧 존슨이 나오면 사람들의 관심사는 탈삼진에서 볼넷으로 바뀌었다. 가을 무대가 어느 팀보다 중요한 양키스는 존슨이 포스트시즌 3경기에서 16.92(13이닝 10실점)에 그친 점도 실망스러웠다. 양키스에서 실패한 존슨은 2007년 다시 애리조나로 트레이드 됐다.

 

2006년 서재응 (다저스탬파베이) *트레이드

 

: 10G 245.78 (bWAR -0.3 fWAR 0.0)

 

: 16G 185.00 (bWAR 0.7 fWAR 0.0)

 

2005년 메츠에서 컨트롤 아티스트로 주가를 올린 서재응은 우여곡절 끝에 다저스로 이적. 당초 메츠는 탬파베이 대니 바에스를 데려올 카드 중 한 명으로 서재응을 제시했는데, 탬파베이가 받아들이지 않았다(서재응도 내심 다저스를 반겼다). 다저스 콜레티 단장은 서재응에게 선발 기회를 줄 것을 약속. 서재응은 시즌 초반 계속 선발로 올라왔지만, 확실한 눈도장을 찍지 못했다. 이에 다저스는 탬파베이 2선발 마크 헨드릭슨을 영입하는 대신 서재응을 보냈다. 이때만 하더라도 아직 최약체 팀을 벗어나지 못했던 탬파베이는 서재응에게 충분히 선발 기회를 줬다. 서재응은 선발 첫 11경기에서 1승밖에 없었지만, 평균자책점은 4.26으로 선전했다. 그러나 남은 5경기 중 3경기에서 5실점 이상 하면서 한계를 드러냈다. 한 이닝 스리런 홈런 두 방을 허용한 926일 양키스전 1.2이닝 8실점이 가장 뼈아팠다. 서재응은 2007년 탬파베이에서 348.13(11경기)을 끝으로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지 못했다. 한편 2003년 애리조나에서 선발로 시즌을 맞이한 김병현은 7경기 153.56 이후 보스턴으로 이동. 7경기 중 5경기는 선발로 나왔지만, 이내 불펜으로 기용됐다.

 

2012년 애런 쿡 (콜로라도보스턴)

 

: 17G 3106.03 (bWAR -0.5 fWAR 0.8)

 

: 18G 4115.65 (bWAR -1.4 fWAR -0.4)

 

'투수들의 무덤' 쿠어스필드를 10년간 홈으로 쓴 투수. 쿠어스필드 통산 104선발은 지금도 깨지지 않은 기록이다(호르헤 데라로사 100선발, 제프 프랜시스 91선발). 2008년 쿡이 1693.96의 성적으로 모두를 놀라게 하자, 한때 콜로라도는 쿠어스필드에 대한 해결책을 땅볼투수에게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32950만 달러 연장 계약을 받은 뒤부터 쿡은 쿠어스필드에 굴복하기 시작했다. 2011년 스프링캠프에서는 검지 손가락 골절로 6월이 되어서야 합류. 신통치않은 모습을 보였지만, 보스턴이 마이너리그 계약으로 마지막 동아줄을 건네줬다. 보스턴 데뷔전에서 볼티모어를 상대한 쿡은 2.2이닝 7실점(6자책)으로 혼쭐이 났다. 630일 시애틀 원정에서 9이닝 2피안타 무사사구 완봉승을 달성했지만, 이 경기가 쿡의 마지막 투혼이었다. 쿠어스필드 경력을 살리지 못했던 쿡은 유독 볼티모어에게 약했다(4경기 311.93).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하는 구로다 히로키

 

2012년 구로다 히로키 (다저스양키스)

 

: 32G 13163.07 (bWAR 3.4 fWAR 2.9)

 

: 33G 16113.32 (bWAR 5.3 fWAR 3.4)

 

꾸준함의 화신. 이러한 측면만 보면 아시아 투수 가운데 가장 인정을 받았다. 기복 없는 피칭, 1년 계약만 고집한 철학은 올곧은 대나무 같았다. 양키스는 다저스에 있을 때부터 구로다(사진) 영입에 공을 들였다. 20117월 트레이드를 문의했지만, LA를 떠나지 않겠다는 구로다의 의지가 확고했다. 그러다 구로다는 마음을 돌려 양키스 혹은 보스턴에서 뛰고 싶다는 생각을 밝혔다. 양키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다저스에서 양키스로 온 구로다는 마치 다저스에서 뛰는 듯한 성적을 냈다. 내셔널리그 서부에서 아메리칸리그 동부로 넘어온 투수 중 최대 성공 사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데릭 지터가 직접 잔류를 설득할만큼 양키스 전력의 핵심이었던 구로다는 3년간 한 번의 흐트러짐 없이 제 몫을 다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다저스 통산 41463.45 bWAR 10.1, 양키스 통산 38333.44 bWAR 11.2).

 

2012년 제이슨 해멀 (콜로라도볼티모어) *트레이드

 

: 27G 7134.76 (bWAR 0.9 fWAR 1.1)

 

: 20G 8063.43 (bWAR 2.9 fWAR 2.6)

 

2009-11년 쿠어스필드에서 악전고투했던 해멀은 20122월 볼티모어로 트레이드. 볼티모어 언론은 해멀이 온 것보다 제레미 거스리가 팀을 떠난 것에 분노했다. 환영받지 못했던 해멀은 보란듯이 활약했다. 볼티모어 데뷔전이었던 49일 미네소타전에서는 7회까지 안타를 맞지 않는 노히터 피칭을 펼쳤다(8회 저스틴 모어노와 조시 윌링햄에게 백투백 2루타를 맞고 8이닝 1실점 승리에 만족했다). 617일 애틀랜타 원정에서는 1피안타 완봉승을 따내기도 했던 해멀은 내구성이 문제였다. 2012년 무릎, 2013년 오른팔 굴근 부상으로 한 번도 정규이닝을 충족하지 못했다(2012118이닝, 2013139.1이닝). 흥미로운 사실은 해멀이 풀타임 선발로 뛴 2009-17년 동안 규정이닝을 넘기지 못한 것은 볼티모어 유니폼을 입은 두 시즌 뿐이었다.

 

2015년 웨이드 마일리 (애리조나보스턴) *트레이드

 

: 33G 08124.34 (bWAR 0.5 fWAR 1.3)

 

: 32G 11114.46 (bWAR 2.4 fWAR 2.7)

 

마일리는 2012년 내셔널리그 신인왕 2위로 화려하게 출발했다(16113.33). 2,3년차에 성적은 하락했지만, 데뷔 첫 3년간 연 평균 200이닝을 소화하는 이닝이터 역할을 해줬다. 존 레스터가 시카고 컵스로 떠난 보스턴은 때마침 좌완 선발을 구해야 했다. 이에 유망주 세 명을 내주면서 경쟁팀이었던 텍사스, 마이애미, 토론토를 따돌렸다(셋 중 한 명이 삼성에서 뛰었던 앨런 웹스터다). 마일리는 보스턴이 생각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하지만 돔브로스키 사장 지휘하에 우승을 노렸던 보스턴은 이듬해 대형 좌완을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721700만 달러를 안겨준 데이빗 프라이스였다. 프라이스가 오면서 희소성이 줄어든 마일리는 한 시즌만에 보스턴을 떠났다. 선발보다 불펜 재정비가 시급했던 보스턴은 2015년 시애틀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카슨 스미스(70경기 2.31)를 데려왔다. 스미스는 부상에 신음하는 날이 더 많았다.

 

2019년 클레이 벅홀츠 (애리조나토론토)

 

: 16G 722.01 (bWAR 3.2 fWAR 1.7)

 

: 12G 256.56 (bWAR -0.3 fWAR 0.1)

 

가장 최근 내셔널리그 서부에서 아메리칸리그 동부로 건너간 투수다. 그런데 벅홀츠는 혈통이 아메리칸리그 동부다. 보스턴에서만 10년을 뛰었기 때문에 해당 조건에 부합하는 투수로는 보기 힘들다. 커리어가 마감될 위기에 놓였던 벅홀츠는 지난해 애리조나에서 부활을 알리는 듯 했다. 하지만 올해 어깨 부상으로 인해 상당 경기를 놓쳤고, 등판한 경기에서도 세월의 허무함만 느끼게 해줬다. 올 겨울 토론토가 선발투수 세 명을 영입했기 때문에 토론토에서 더 기회는 얻지 못할 것이다.

 

기사제공 이창섭 칼럼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