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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다저스의 무키 베츠(28)는 이름만 봐도 야구를 위해 태어난 사나이다. 그의 본명은 마커스 린 베츠(Markus Lynn Betts). 이니셜만 따면 MLB가 된다. 메이저리그(Major League Baseball)를 좋아하는 베츠의 어머니가 아들 이름을 지을 때 머리글자가 ‘MLB’가 되게 했다.
‘무키’란 별명은 1990년대 NBA 애틀랜타 호크스 등에서 포인트 가드로 활약한 무키 블레일락(53)에서 따온 것이다. 그런데 블레일락 역시 무키가 본명이 아니다. 그의 이름은 대런 오셰이 블레일락. 참고로 둘은 만난 적이 없다.
고교 시절의 무키 베츠. 그는 야구와 농구, 볼링에서 모두 테네시주 최고의 선수로 꼽혔다. / 테네시안
◇ 야구·농구·볼링 모두 잘했던 유망주
베츠는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태어났다. 미국엔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부모님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성장한 흑인 스포츠 스타들이 많다. 하지만 베츠는 늘 가족과 함께였다. 그의 부모님은 베츠가 10살 때 이혼했지만, 아들의 일이라면 기꺼이 힘을 합쳤다.
베츠는 ‘운동 천재’로 성장했다. 다섯 살 때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리틀야구 팀에 갈 때만 해도 코치는 “아이가 너무 작고 말랐다”며 팀에 받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가 직접 베츠를 가르쳤다. 그는 주머니 속 송곳처럼 재능을 드러냈다.
베츠는 내슈빌 오버턴 고교 졸업반 시절엔 5할이 넘는 타율에 30도루를 기록하며 테네시주 고교 올스타에 뽑혔다. 175cm의 크지 않은 키에도 덩크 슛을 꽂을 만큼 점프력이 뛰어났던 베츠는 포인트 가드로도 두각을 나타내며 ‘내슈빌 올해의 고교 농구 선수’에도 선정됐다.
어머니가 좋아한 볼링에도 소질이 있었다. 고교 시절 ‘테네시주 올해의 학생 볼러’가 됐다. 베츠는 야구 선수가 된 후에도 프로 볼링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프로볼링인 PBA 주관 대회에 출전해 퍼펙트게임(10프레임에서 모두 스트라이크를 기록하는 것으로 300점)을 세 차례나 기록했다. 작년엔 프로 볼러 토미 존스와 짝을 이뤄 NBA 스타 크리스 폴이 주최한 자선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의 베츠. 그는 2018년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며 시즌 MVP까지 차지했다. / 인스타그램
◇ 2018년 메이저리그를 천하통일
베츠는 2011년 신인 드래프트 5라운드에 보스턴 레드삭스에 지명됐다. 체격이 작아 많은 팀이 그를 외면했지만 당시 레드삭스의 단장이었던 테오 엡스타인은 일종의 선구안 테스트에서 베츠가 높은 점수를 받자 5라운드 지명권을 그에게 행사했다. 컴퓨터 화면 속에서 날아오는 공에 대해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 혹은 스윙을 할 건지 말 건지에 판단해 버튼을 누르는 방식의 테스트였다.
베츠를 지명한 엡스타인 단장의 ‘선구안’은 옳았다. 2014시즌 메이저리그 무대에 데뷔한 베츠는 2015년부터 풀타임 빅 리거로 활약했다. 지난해까지 레드삭스에서 뛰며 리그 MVP(2018), 외야수 부문 골드글러브(2016~2019), 외야수 부문 실버슬러거(2016·2018~2019), 타격왕(2018), 30-30 클럽(2018) 등 공·수·주를 모두 갖춘 아메리칸리그 최고의 외야수로 활약했다.
2018년엔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도 끼었다. 그해 베츠는 아메리칸리그 선수로는 역대 처음으로 한 시즌에 월드시리즈 우승과 MVP, 골드글러브, 실버슬러거상을 휩쓸었다. 내셔널리그에선 1980년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내야수 마이크 슈미트가 이 영예를 처음 차지했다.
2018년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ALCS 4차전에서 베츠의 호수비 장면. 베츠는 끝까지 쫓아가 공을 잡았지만 관중의 방해로 공을 놓쳤다. 결국 아웃 판정을 받았다. / 조선일보DB
2020시즌이 끝나고 FA 자격을 얻는 베츠는 지난 2월 트레이드로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었다. 코로나 사태로 시즌이 뒤로 밀리면서 베츠를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내줄 위기에 처한 다저스는 7월 베츠와 12년 총액 3억5000만달러(약 4000억원)의 초대형 계약을 맺었다.
베츠는 팀당 60경기로 단축된 올 시즌 정규리그에서 타율 0.292, 16홈런 39타점으로 활약했다. 이번 포스트시즌에선 타율 0.311, 5타점을 기록했다. 아직 홈런이 나오지 않은 것이 아쉽다.
◇ 다저스를 월드시리즈로 이끈 ‘더 캐치’ 퍼레이드
방망이가 기대에 약간 못 미쳤지만, 베츠는 4년 연속 골드글러브 수상자답게 글러브로 게임의 향방을 바꿨다. ‘더 캐치(The Catch)’로 불릴 만한 장면이 여러 차례 나왔다.
1954년 월드시리즈를 화려하게 수놓은 윌리 메이스의 '더 캐치' 장면. / 조선일보DB
‘더 캐치’는 1954년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 뉴욕 자이언츠 소속의 중견수 윌리 메이스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상대로 선보인 호수비를 말한다. 당시 중앙 외야가 비정상적으로 넓었던 폴로 그라운드에서 메이스는 머리 위를 넘어가는 타구를 홈 플레이트에 등을 보인 채로 끝까지 쫓아가 잡아냈다. 메이스의 활약에 힘입어 1차전을 5대2로 승리한 자이언츠는 기세를 몰아 4전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ALCS 5차전에서 시리즈의 향방을 바꾼 베츠의 호수비 장면. / AP 연합뉴스
베츠는 17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맞붙은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5차전에서 1승3패로 벼랑 끝에 몰렸던 팀을 구해냈다. 애틀란타가 2-0으로 앞선 3회초 1사 2·3루 상황에서 스완슨이 친 공이 아슬아슬하게 짧았다.
전력 질주한 베츠는 이 공을 바운드 없이 가까스로 걷어낸 뒤 균형을 유지한 채 사이드암으로 홈에 뿌렸다. 3루 주자가 태그업해서 홈으로 들어와 세이프가 선언됐지만, 비디오 판독 결과 베츠가 공을 잡기 전에 3루에서 발이 떨어진 것으로 나왔다. 순식간에 더블 아웃으로 이닝이 종료됐다.
흐름을 가져온 다저스는 6회와 7회에 각각 3점씩 뽑으며 7대3으로 역전승했다.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은 “올해 많은 명장면이 있었고, 호수비들이 있었다”며 “하지만 경기 흐름을 바꾼 장면을 생각할 때 베츠가 보여준 수비가 나에겐 올해 최고의 플레이였다”고 말했다.
ALCS 6차전에서 나온 베츠의 환상적인 점프 캐치. / AP연합뉴스
베츠의 호수비는 18일 6차전에서도 이어졌다. 다저스가 3-0으로 앞선 5회초 오수나의 홈런성 타구를 펜스 앞에서 점프해 잡아냈다. 만약 이 타구가 홈런이 됐다면 3-2로 쫓기면서 시리즈 향방을 알 수 없게 될 수도 있었다. 다저스는 이날 베츠의 수비를 앞세워 3대1로 승리했다.
ESPN은 “베츠의 호수비는 스완슨의 떨어지는 타구를 걷어내 5차전 분위기를 바꾼 수비 이후 24시간도 되지 않아 나왔다”면서 “다저스가 애틀랜타를 떨어뜨리고 챔피언십시리즈를 승리한다면 베츠의 ‘더 캐치’는 영원히 기억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베츠의 호수비는 ALCS 7차전에서도 이어졌다. / AP 연합뉴스
그리고 ‘더 캐치’는 하루 뒤에 또 나왔다. 베츠는 19일 7차전에선 더 멋진 장면을 만들어냈다. 애틀랜타가 3-2로 앞선 5회초 무사 상황에서 프리먼이 날린 큰 타구를 다시 한번 담장 앞에서 점프해 낚아챘다. 타구의 방향으로 볼 때 베츠가 잡지 않았다면 무조건 넘어가는 공이었다. 베츠가 추가 실점을 막아낸 다저스는 에르난데스와 벨린저의 연속 홈런으로 경기를 4대3으로 뒤집고 월드시리즈 진출의 감격을 누렸다. 베츠의 수비가 지배한 시리즈가 됐다.
월드시리즈 진출을 확정하고 딸과 함께한 베츠. / AFP연합뉴스
◇ 32년 만의 우승을 베츠의 손으로?
세 차례의 환상적인 수비로 자신이 왜 4000억원의 사나이인지를 입증한 베츠는 탬파베이 레이스와의 2020 월드시리즈에서 자신의 두 번째 우승 반지에 도전한다. 탬파베이엔 2015년과 2016년 두 차례 아메리칸리그 외야수 부문 골드글러브를 수상한 명 중견수 케빈 키어마이어가 버티고 있어 둘의 외야 수비 대결도 기대를 모은다(2016년 아메리칸리그 외야수 부문 골드글러브 수상자가 베츠와 키어마이어, 브렛 가드너였다).
175cm의 작은 키에도 뛰어난 운동 능력과 성실성으로 성공 신화를 써나가는 베츠는 가슴이 따뜻한 남자로도 유명하다. 2018년 월드시리즈 2차전이 끝난 뒤엔 그가 보스턴 도서관 앞에서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제공한 것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베츠는 중학 시절 만나 연인이 된 브리아나와 지금까지 함께하는 ‘순정남’이기도 하다. 둘 사이엔 두 살 된 딸이 있다.
그동안 초대형 계약을 맺은 뒤 부진에 빠져 ‘먹튀’가 되어버린 수많은 선수들이 있었다. 하지만 베츠는 올 가을 엄청난 수비로 다저스를 월드시리즈로 끌어올리며 몸값과 어울리는 활약을 하고 있다. 과연 베츠가 1988년 이후 32년 만에 다저스에 우승을 안길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는 베츠가 다저스의 전설로 가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장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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