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드센스
1970년대 초반 메이저리그는 재정적으로 매우 어려웠다. 극악의 투고타저 때문이었다. 1969년 마운드 높이를 낮췄지만 인기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심지어 1972년 아메리칸리그는 12팀 중 8팀이 적자였다.
아메리칸리그는 해결책을 고민했다. 그러나 웬만한 방법으로는 위기를 벗어날 수 없었다. 오직 공격만이 살 길이라고 내다봤던 아메리칸리그는 투수 타석 대신 지명타자를 내세우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괴짜 구단주이자 입김이 가장 강했던 오클랜드 찰스 오스카 핀리의 생각이기도 했다.
아메리칸리그가 내셔널리그에게 또 한 번 공격에서 밀렸던 1972년. 아메리칸리그는 지명타자 도입을 두고 구단주 투표가 열렸다. 이 투표에서 찬성 8표를 얻어 안건이 가결됐다. 당장 다음 시즌부터 시행하게 된 지명타자 제도를 두고 누군가는 재키 로빈슨의 등장과 비교했다. 디트로이트 언론은 "베이브 루스 이후 아메리칸리그의 가장 흥미로운 사건"이라고 보도했다.
1973년 4월7일 뉴욕 양키스는 1루수 론 블롬버그를 6번 지명타자로 내보냈다. 메이저리그 최초의 지명타자였다. 보스턴전에 나온 블롬버그의 상대 투수는 이전 시즌 평균자책점 1위 루이스 티안트.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타석답게 호쾌한 한 방을 기대했는데, 정작 블롬버그는 스윙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밀어내기 점수를 만들어냈다. 참고로 1967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출신인 블롬버그는 통산 기록에서 볼넷이 삼진보다 많다(140볼넷 134삼진).
지명타자 효과는 첫 해부터 나타났다. 아메리칸리그는 1973년 경기당 평균 4.28득점을 기록해 내셔널리그 4.15득점을 근소하게 넘어섰다. 리그 타격 성적도 이전과 비교해 분명 나은 수치를 보였다.
리그 평균 타율 / OPS
1971 [AL] 0.247 / 0.681
1971 [NL] 0.252 / 0.683
1972 [AL] 0.239 / 0.649
1972 [NL] 0.248 / 0.680
1973 [AL] 0.259 / 0.710
1973 [NL] 0.254 / 0.698
과감하게 지명타자를 받아들인 아메리칸리그는 혁신적인 무대가 됐다. '반쪽 선수'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던 선수들도 점차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특히 지명타자는 수비가 힘들어진 노장 선수들에게 또 다른 기회의 장이었다.
1975년 밀워키 버드 셀릭 구단주는 수비를 볼 수 없는 40대 선수를 지명타자로 영입했다. 행크 애런이었다. 밀워키 브레이브스에서 첫 걸음을 내딛었던 애런은 지명타자가 생긴 덕분에 밀워키로 돌아와서 마지막 2년을 보냈다. 같은 팀은 아니었지만, 애런이 밀워키에 온 것만으로도 큰 화제였다. 실제로 밀워키 카운티스타디움은 애런의 홈 데뷔전을 보기 위해 역대 두 번째로 많은 관중 4만8160명이 집결했다.
아메리칸리그가 나날이 변화를 주고 있는 사이, 내셔널리그는 꼿꼿이 투수 타석을 고집했다. 그런데 내셔널리그도 지명타자 논의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1977년 내셔널리그는 지명타자 채택 여부를 놓고 구단주 투표를 진행했다. 당시 지명타자가 가장 절실한 팀은 필라델피아였다. 필라델피아는 올스타 좌익수 그렉 루친스키와 유망주 키스 모어랜드를 동시에 쓰고 싶었다. 타격은 강했지만 수비가 떨어졌던 모어랜드는 지명타자로 안성맞춤이었다. 이에 필라델피아는 구단주 루리 카펜터에게 보고해 지명타자 도입을 찬성하도록 설득했다. 카펜터 역시 대신 총회에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던 빌 자일스 부사장에게 찬성표를 지시했다.
규정이 바뀌려면 12표 중 7표가 필요했다. 필라델피아와 더불어 피츠버그도 지명타자에 호의적인 입장이었다. 분위기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전제 조건이 있었다. 투표에서 통과를 해도 지명타자가 즉시 생기는 건 아니었다. 바뀐 규정이 적용되는 시기는 1983년으로, 무려 5년이 더 남아 있었다.
이 변수는 자일스가 함부로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자일스는 급히 구단주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낚시 여행을 떠난 구단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휴대폰이 없었다). 결국 자일스는 투표에서 찬성도, 반대도 아닌 기권표를 던졌다. 필라델피아처럼 단장이 대신 참석한 피츠버그도 마찬가지. 투표 결과는 찬성 6표, 반대 4표, 기권 2표였다(찬성 4표, 반대 5표, 기권 3표라는 기록도 있다). 이처럼 내셔널리그 지명타자 도입은 아쉽게 무산됐고, 공식 논의는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았다.
야구의 전통성을 고수한 내셔널리그는 지명타자에 한층 적대적으로 대응했다. LA 다저스 구단주 피터 오말리는 지명타자는 술책(gimmick)이며, 야구에서 이 술책이 통하는 곳은 없다고 일갈했다. 애틀랜타 단장과 감독을 지낸 바비 콕스 역시 지명타자는 야구의 망신이라고 비난했다. 그렇게 두 리그는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내셔널리그와 지명타자의 조합은 없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올해 코로나19로 인해 선수 보호가 중시되면서 내셔널리그도 지명타자를 내세우는 데 합의했다.
오랜만에 아메리칸리그와 진검승부를 펼친 내셔널리그는 공격력이 좋아졌을까. 올해 경기당 평균 득점에서 4.71점을 올려 46년 만에 아메리칸리그(4.58득점)보다 많은 점수를 뽑았다(1974년 NL 4.15득점, AL 4.10득점). 뿐만 아니라 홈런과 타점, 리그 평균 타율과 OPS에서도 아메리칸리그에 앞섰다.
2020 양 리그 홈런 타점 / 타율 / OPS
1161홈런 4043타점 / 0.246 / 0.746 (NL)
1143홈런 3935타점 / 0.243 / 0.733 (AL)
지난해 내셔널리그 투수들이 거둔 타격 성적은 .131 .162 .166에 불과했다(4850타석). 조정득점생산력(wRC+)은 -17로 처참했고, 삼진율은 43.1%에 육박했다. 가끔 짜릿함을 안겨준 투수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투수 타석은 시간만 허비했다. 반면 올해 내셔널리그 지명타자들이 거둔 성적은 .238 .322 .425였다(4845타석). wRC+는 101로 리그 평균보다 높았으며, 삼진율은 24%였다.
투수 타석이 지명타자 타석으로 바뀐 것은 공격력의 상승을 불러왔다. 양 리그 균형은 물론 리그 전체가 발전하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자 내셔널리그도 지명타자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다. 팬그래프 설문조사에 따르면 내년에도 내셔널리그 지명타자를 찬성하는 득표율이 훨씬 높았다(75.19%).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야 한다는 주장도 여전히 존재한다. 초창기 야구의 모태가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시대가 흐르면서 야구는 변했고, 또 변해야만 한다. 선발 비중이 낮아지고 불펜 비중이 높아진 오늘날 야구는 투수 타석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1973년 경기당 평균 2.80타석이었던 내셔널리그 투수 타석이 지난해 1.98타석까지 떨어졌다. 전통주의자들이 지키려는 투수 타석은 세월의 흐름에 맞춰 이미 줄어들고 있다.
투수 타석의 또 다른 묘미는 감독의 더블 스위치 작전이다. 그러나 감독의 역량이 더 요구되는 건 순수 타자들만 상대했을 때다. 명예의 전당에 오른 토니 라루사 감독은 이러한 측면에서 아메리칸리그 감독이 더 힘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내년 시즌 내셔널리그 지명타자의 운명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과거하고 달리 선수노조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결정이 늦어지는 탓에 각 팀들의 전력 구상도 지체되고 있다.
내셔널리그가 지명타자를 두는지에 따라 선수들의 가치도 달라질 예정이다. 올해 통산 3번째 지명타자 실버슬러거를 수상한 넬슨 크루스도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갈 수 있는 팀이 많아지면 그만큼 몸값도 올릴 수 있다. 마르셀 오수나와 카일 슈와버도 수혜자가 될 것이며,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리는 나성범에게도 좀 더 유리해질 전망이다.
기사제공 이창섭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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