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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의 MLB+] 다시 불 붙은 MLB 부정투구 논란

야구상식

by jungguard 2021. 2. 1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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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릿콜

야구 규칙에 따르면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공에 로진백을 제외한 어떤 이물질도 묻혀서 던지면 안 된다. 이른바 스핏볼(spit ball)이라 불리는 부정투구 때문에 생긴 규정이다. 공에 무엇인가를 바르거나, 흠집을 내 거나, 모양을 변형 시켜 던지면 예측하기 힘든 방향으로 휘어져 나간다. 즉, 외부 요인에 의해 마구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를 가리켜 스핏볼이라고 한다.

 

당연히 타자들은 스핏볼을 치기 어렵다. 따라서 이를 허용하면 투수에게 지나치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스핏볼은 원칙적으론 1920년부터 금지됐다. 하지만 스핏볼이 '멸종'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60-70년대를 풍미했던 게일로드 페리(통산 314승)는 누구나 알고 있는 '스핏볼의 달인'이었으나,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스핏볼이 자취를 감춘 것은 중계 기술이 발전한 1980-90년대부터였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메이저리그에는 스핏볼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부정투구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2019년 뉴욕 양키스와의 경기에서 모자 챙에 미리 묻혀둔 파인타르로 추정되는 물질을 엄지로 훑는 기쿠치 유세이(사진=MLB.com)

 

바로 '파인타르(pine-tar, 소나무과 식물의 뿌리 또는 줄기를 건류해서 만든 흑갈색을 띄는 점성이 강한 물질)'를 비롯한 여러 물질을 통해 마찰력을 높이는 방식의 부정투구다. 더 심각한 점은 상대 투수가 파인타르 등의 접착성 물질을 손가락에 발라 던진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현장인이 이를 묵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사무국 역시 이를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지난 5년간 중계 화면에 버젓이 부정 투구를 하는 모습이 포착되도 해당 선수에 대한 사무국 차원의 처벌은 없었다. 이런 메이저리그의 부정적인 일면을 보여주는 일이 지난 8일에도 있었다.

 

"버바씨, 게릿 콜입니다. 곤경에 처해있는 저를 도와주실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윙크하는 이모티콘). 5월까진 보지 못하지만, 4월에 원정 경기가 있습니다. 작년에 받은 '물건'은 차가워져서 쓸 수가 없네요." -2019년 1월, 당시 휴스턴 애스트로스 소속이었던 게릿 콜(30·뉴욕 양키스)이 LA 에인절스의 클럽하우스 매니저 브라이언 '버바' 하킨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이 문자 메시지는 투수들에게 '공에 바르는 불법적인 물질'을 제공했다는 혐의로 지난해 3월에 해고된 하킨스 측이 오렌지 카운티 법정에 제출한 증거다. 하킨스 측은 지난해 8월, 에인절스와 MLB 사무국을 명예훼손 및 부당해고로 고소했다. 요지는 "사무국과 구단이 선수들의 이물질 사용을 알고 있었음에도 선수 보호를 위해 나만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만든 '이물질(로진과 파인타르의 혼합물)'을 사용한 투수들을 폭로했다. 하킨스에 따르면 콜 외에도 저스틴 벌랜더, 맥스 슈어저, 펠릭스 에르난데스, 코리 클루버, 아담 웨인라이트 등 다른 슈퍼스타급 투수들도 이물질을 묻혀 던지는 부정 투구를 했으며, 트로이 퍼시벌을 비롯해 대부분의 에인절스 투수들도 이를 사용했다.

 

이런 하킨스의 폭로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를 통해 전해지면서, 미국 현지뿐만 아니라 한국 메이저리그 팬들 사이에서도 많은 화제를 모으고 있다.

 

물론 파인타르로 대표되는 이물질을 사용한 부정 투구는 2015시즌 후반기부터 현재 MLB가 사용 중인 공인구로 교체된 이후 잊을만하면 제기됐던 논쟁거리였다. 한편, 가끔씩 부정 투구가 적발되더라도 대부분의 타자들은 "파인타르가 호투에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상대 투수들을 옹호하는 경우가 많았다.

 

2018년 트레버 바우어는 “파인타르가 스테로이드보다 성적향상 효과가 뛰어나다“고 말했다(사진=트레버 바우어의 SNS)

 

이유는 단순하다. 자신의 팀 동료들도 파인타르를 비롯한 이물질을 사용해 부정 투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것이 명백히 규정을 위반한 행위일 뿐만 아니라, 현장인들은 암묵적으로 파인타르 사용을 용인하고 있을지라도, 대부분의 팬은 '너무 티 나게 묻히는 사례'가 아닌 이상 파인타르를 사용한다는 걸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팬들에 대한 명백한 기만이다. 야구공에 파인타르를 묻혀 던지는 행위는 바셀린처럼 미끌거리는 이물질을 묻혔을 때처럼 변화무쌍한 움직임을 만들어내진 못한다. 그러나 파인타르를 사용하면 그립감을 높여서 실투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공의 회전수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다. 그리고 '회전수'는 '구위'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18년 당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선발 투수였던 트레버 바우어는 SNS를 통해 "규정은 규정대로 시행되어야 한다. 파인타르는 스테로이드보다 성적 향상 효과가 뛰어나다"고 말했다. 이어 "내 패스트볼 구속은 분당 회전수(rpm)가 2250회 정도다. 그러나 파인타르를 사용할 경우 약 400rpm을 추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포심 패스트볼의 회전수에 따른 성적 변화

 

2600rpm 이상: [피안타율] .213 [헛스윙율] 27.5% 

2300rpm 이상: [피안타율] .253 [헛스윙율] 21.6% 

2300rpm 미만: [피안타율] .280 [헛스윙율] 17.1% 

2000rpm 미만: [피안타율] .309 [헛스윙율] 13.1% 

메이저리그 평균 포심 패스트볼 rpm: 2264회

 

실제로 <베이스볼서번트>에 따르면 지난해 2300rpm 이하 포심 패스트볼의 피안타율은 .280 헛스윙율은 17.1%다. 하지만 2600pm 이상일 경우 피안타율은 .213으로 감소하고, 헛스윙율은 27.5%까지 늘어난다. 만약 바우어의 말대로 파인타르가 패스트볼의 분당 회전수를 400여 회 늘릴 수 있다면 이는 스테로이드 못지않은 부정행위(cheating)로 볼 여지도 있다.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파인타르 등 이물질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훈련을 통해 회전수를 높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던 바우어의 올해 패스트볼 평균 분당 회전수가 2776회로 2년 전 대비 정확히 454회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우어는 5승 4패 73이닝 평균자책점 1.73으로 NL 사이영상을 수상한 후 시장에 나와 FA 대박 계약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모든 메이저리그 투수가 파인타르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며, 이는 심각한 형평성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요약하자면 파인타르 사용은 한 투수의 구위에 큰 영향을 미치며, 원칙적으로도 명백한 규정 위반 행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인들은 암묵적으로 파인타르 사용을 용인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팬은 '너무 티 나게 묻히는 사례'가 아닌 이상 어떤 투수가 파인타르를 사용한다는 걸 알지 못한다. 그리고 이는 선수에 대한 실망감과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최근 들어 파인타르 사용이 잦아진 이유는 2015년 후반부터 사용되고 있는 공이 이전에 비해 실밥 솔기가 낮고 더 미끄러워 졌으며, 미국의 이상 기후 여파로 4월에도 한파가 야구장을 덮친 것 역시 영향을 미쳤을 확률이 높다(관련 기사: [이현우의 MLB+] 메이저리그는 지금 제2의 스핏볼 시대, 2018년).

 

하지만 설사 그렇다고 할지라도 현행 규정하에서 파인타르 등 접착성 이물질을 사용하는 것이 규정 위반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며, 대부분(약 70-90%)의 투수가 부정 투구를 하고 있다는 것(유력한 추정인 것과는 별개로)이 특정 투수를 옹호하거나, '안 하는 투수가 바보'라는 식으로 규정을 준수하고 있는 투수를 매도하는 데 쓰여서는 안 된다.

 

15년 올스타전 이전에 사용된 공인구과 2017년 공인구의 내부 차이. 코어의 모양이 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많은 투수는 2015년 이후 공인구의 솔기가 상대적으로 낮아졌으며 더 미끄러워졌다고 주장하고 있다(사진=ESPN 캡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어짜피 현장인 모두가 개의치 않는다면 더이상 쉬쉬할 필요없이 파인타르를 '로진백' 또는 '러빙 머드'처럼 투구시 사용 가능한 물품으로 지정하는 것이다. 그 대신 타자가 파인타르를 배트에 바를 때와 마찬가지로 사무국이 사용량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둘째, 파인타르 같은 외부 물질을 쓸 필요가 없도록 공을 덜 미끄럽게 만드는 것이다.

 

가장 최악은 지금처럼 대부분의 팬은 모르는 채, 현장인들끼리만 암묵적으로 파인타르 사용을 서로 용인해주는 형태가 지속되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응원하는 투수가 이전보다 좋은 투구를 펼치는 이유가 파인타르를 바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면 어떨까? 그때 팬들이 느낄 충격은 스테로이드 파동 때 못지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가 나온 지가 벌써 수년이 지났음에도 MLB 사무국은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전혀 없는 듯이 보인다.

 

이현우 기자 hwl05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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