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드센스
이번 시즌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대거 교체된 감독들이다. 전체 1/3에 해당하는 팀들이 감독 명함을 바꿨다. 이처럼 한꺼번에 10팀의 감독이 달라진 것은 2003년 이후 처음이다(2003년 컵스 클리블랜드 디트로이트 밀워키 메츠 오클랜드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탬파베이 텍사스).
메이저리그는 감독 수명이 짧아지고 있다. 에인절스 마이크 소시아(2000~2018)에 이어 샌프란시스코 브루스 보치(2007~2019)와 캔자스시티 네드 요스트(2010~2019)마저 은퇴하면서 한 팀에 가장 오래 머무른 감독은 오클랜드 밥 멜빈(2011~2020)이 됐다. 2018년 10월에 2년 연장 계약을 맺은 멜빈은 내년까지 임기가 보장되어 있다. 참고로 현재 5시즌 이상 팀을 지킨 감독은 멜빈과 더불어 클리블랜드 테리 프랑코나(2013~2020)와 탬파베이 캐빈 케시(2015~2020) 뿐이다. 감독 교체가 얼마나 잦았는지 알 수 있다.
데이터 통계 분석이 부각되면서 감독 유형도 많이 달라졌다. 새로운 문물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젊은 감독들이 인기를 끌었다. 아이비리그 출신들이 물밀듯이 프런트에 합류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전통을 강조하는 올드스쿨 감독들의 퇴조였다.
메이저리그 통산 22년의 감독 경력을 보유한 짐 릴랜드(75)는 기술에 함몰되어 경험을 경시하는 세태를 꼬집었다. 베테랑 감독들의 업적이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릴랜드는 "잭 매키언은 70대에 복귀해서 월드시리즈 우승을 해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2003년 매키언은 73세에 플로리다를 우승시켰다).
릴랜드의 외침이 통한 것일까. 이번 시즌은 현장을 떠났던 일부 베테랑 감독들이 다시 돌아왔다.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익숙한 얼굴과 새로운 얼굴이 더해진 각 팀의 신임 감독들을 살펴봤다.
조 매든 (LA 에인절스)
남다른 존재감을 과시하는 스타 감독. 컵스에서 5년 2500만 달러 대우를 받았던 매든(66)은 에인절스와 3년 1200만 달러 계약을 맺었다. 탬파베이의 도약과 컵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면서 명장 대열에 합류. 지난해 레임덕 현상이 나타나긴 했지만 자유의 몸이 되자 여러 팀들이 관심을 드러냈다. 이가운데 에인절스는 브래드 아스머스를 해고하면서 즉시 매든이 올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뒀다. 에인절스가 이같은 움직임을 취하자 매든도 다른 팀은 만나지도 않았다는 후문이다.
매든과 에인절스는 오래 전부터 인연을 맺어온 특별한 관계다. 매든은 선수, 코치, 감독 대행으로서 에인절스에 약 30년간 몸을 담았다. 매든을 빛내준 팀은 탬파베이와 컵스지만, 매든을 키워준 팀은 에인절스였다.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매든이 에인절스로 온 것은 또 다른 도전이다. 2010년 이후 에인절스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것은 2014년이 유일하다. 최고의 선수 마이크 트라웃을 보유하고 있지만, 트라웃의 시대에 암흑기가 도래한 역설적인 상황이다. 특유의 유쾌함으로 팀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이 강점. 그러나 최근 간간이 총기를 잃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데이빗 로스 (시카고 컵스)
2016년 컵스의 월드시리즈 우승 멤버.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앤드류 밀러를 상대로 홈런을 때려낸 적도 있다. 컵스에서 보낸 시간은 은퇴하기 전 두 시즌 뿐이지만, 마치 프랜차이즈 스타처럼 많은 사랑을 받았다. 클럽하우스 리더였던 로스(42)는 지도자 경력은 전무하다. 바비 콕스와 더스티 베이커, 테리 프랑코나 등 훌륭한 감독들을 가까이서 지켜봤지만, 관찰자와 주체자의 차이는 명백하다. 선수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는 친화력도 성적이 좋을 때 돋보이는 법이다. 컵스는 매든이 있는 동안 승리에 익숙한 팀이 됐다. 그러나 같은 기간 유망주 육성에 실패하면서 숨고르기를 해야 한다. 과도기에 팀을 지휘하는 건 초보 감독에게 결코 쉬운 임무가 아니다. 선수 시절 마지막 선물을 받았던 로스가 지도자로서도 컵스와 좋은 궁합을 선보일지 주목된다.
데릭 셸턴 (피츠버그)
지난해 최악의 시간을 보낸 피츠버그는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나섰다. 프랭크 쿠넬리 사장, 닐 헌팅턴 단장, 클린트 허들 감독이 모두 물러났다. 트래비스 윌리엄스 사장과 벤 셰링턴 단장으로 바뀐 수뇌부는 미네소타 벤치코치 셸턴(49)을 감독으로 선임했다. 포수 출신인 셸턴은 선수 은퇴 이후 더 진가가 드러났다. 클리블랜드와 탬파베이 타격코치를 거쳐 토론토에서 퀄리티 컨트롤 코치도 수행했다. 다방면에서 두루 경험을 쌓은 것과 더불어 스몰마켓의 흐름을 이해하고 있는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주축선수 스탈링 마르테(애리조나)를 트레이드 한 피츠버그는 리빌딩 출발선으로 되돌아간 상황. 외로운 싸움이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셸턴은 선수들에게 목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게이브 캐플러 (샌프란시스코)
필라델피아에서 거둔 지난 2년간 성적은 161승163패. 결국 성적 부진으로 해고됐지만, 곧바로 다른 팀 감독이 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줬다. 샌프란시스코 파르한 자이디 사장은 다저스 단장으로 재임하면서 캐플러(44)와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캐플러는 팜 디렉터였다). 캐플러의 최대 강점은 의사소통 능력. 선수 코치 프런트를 비롯해 수많은 미디어도 응대해야 하는 감독은 말재주가 좋아야 한다. 끊임없이 파고드는 학구열도 높은 평가를 받은 부분. 하지만 캐플러는 이미 필라델피아에서 우려스러운 점들을 노출했다. 데이터의 남용과 오용을 자행했고, 그로 인한 선수들과의 불화설도 있었다. 팬들마저 등을 돌린 캐플러는 이론과 실전이 다르다는 것을 일깨워준 감독이었다.
샌프란시스코는 당장의 성과를 요구하는 팀은 아니다. 필라델피아에 비하면 여유를 가지고 팀을 운영할 수 있다. 그러나 캐플러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달라져야 한다. 필라델피아 때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 일단 캐플러는 더 성숙한 감독이 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포장을 화려하게 하는 감독보다 내실을 다지는 감독으로 거듭나야 한다.
마이크 매시니 (캔자스시티)
2012-18년 세인트루이스 감독이었던 매시니(49)가 캔자스시티에 부임했다. 미주리주 라이벌 두 팀을 모두 맡은 감독은 매시니 이전 한 명밖에 없었다. 1980년대 '화이티볼' 열풍을 일으킨 명예의 전당 감독 화이티 허조그다(캔자스시티 1975~79년, 세인트루이스 1980~90년).
토니 라루사가 떠난 자리를 메운 매시니는 기대 이상으로 선전했다. 2012년 감독 첫 해부터 챔피언십시리즈에 안착. 정규시즌 최고 성적(97승65패)을 올린 2013년에는 월드시리즈 진출까지 이뤄냈다(보스턴 2승4패). 2015년에도 정규시즌 유일한 100승 팀이 되는 영광을 누렸다(통산 591승474패 0.555). 매시니는 단 한 번도 팀을 5할 승률 아래로 떨어뜨린 적이 없다(세인트루이스가 마지막으로 5할 승률에 실패한 시즌은 2007년이다). 그렇다면 세인트루이스는 왜 매시니를 2018시즌 중반 경질했을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선수단 관리 실패에 있다. 매시니는 고참 버드 노리스가 신인 조던 힉스를 괴롭히는 일을 방관했으며, 덱스터 파울러와 출장 시간을 두고 대립각도 세웠다.
짧은 영광이 지나간 캔자스시티는 다시 기다림에 돌입한 상태. 한동안 새 시대의 주역을 발굴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매시니는 스스로를 올드스쿨이라고 정의했을 정도로 보수적인 감독이었다. 그리고 지나치게 경직된 성향이 자기 무덤을 파고 말았다. 세인트루이스에서 매시니는 몰리나와 웨인라이트 같은 선수들에게 편승하는 이미지가 강했다. 캔자스시티에서 이 이미지가 오해였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제이스 팅글러 (샌디에이고)
이번 시즌 처음 출사표를 던지는 초보 감독. 1980년생으로 현역 두 번째 최연소 감독이다(로코 볼델리 1981년생). 텍사스에서 여러 보직을 두루 역임한 팅글러는 A J 프렐러 단장이 눈여겨봤다. 프렐러는 텍사스 스카우트 총괄 책임자 시절 2005년 마이너리그 룰5드래프트에서 팅글러를 지명한 바 있다.
팅글러는 선수로서 트리플A도 뛰지 못했지만, 지도자로서 승승장구했다. 프렐러에 따르면 선수들의 잠재력을 깨우는 데 탁월하다고. 이는 유망주들이 넘치는 샌디에이고에게 꼭 필요한 능력이다. 선수 때 팅글러는 공을 고르는 선구안이 뛰어났다. 마이너리그 통산 389경기에서 출루율이 0.378였다. 볼넷이 221개, 삼진은 95개였다. 지난해 팀 출루율이 ML 26위였던 샌디에이고(0.308)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 여전히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팀이지만, 프렐러는 "승리를 위해 팅글러를 데리고 왔다"고 말했다. 최소한 전임 감독 앤디 그린보다는 나은 성적을 올려야 한다.
조 지라디 (필라델피아)
캐플러에게 실망한 필라델피아는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을 믿어보기로. 지라디(55)는 2009년 양키스에서 월드시리즈 우승을 해냈던 감독이다. 당시 지라디가 꺾은 팀이 바로 필라델피아였다(지라디는 선수 시절 데뷔전도 필라델피아를 상대로 치렀다). 양키스에서 10년간 남긴 정규시즌 성적은 910승710패(승률 0.562). 양키스는 2017년 지라디의 마지막 시즌에도 챔피언십시리즈에 올라갔지만, 사인훔치기 팀 휴스턴에게 패했다(3승4패). 포스트시즌에서 몇 차례 판단력이 흐려졌던 지라디는 양키스와 더 함께하지 못했다. 이후 해설위원으로 활동했지만, 현장 복귀에 대한 갈증은 항상 있었다. 지라디는 필라델피아에서 이 아쉬움을 달랠 전망. 방송을 통해 야구를 바라보는 안목을 넓히는 배움의 시간을 가졌다. 필라델피아는 앤디 맥파일 사장이 "포스트시즌 티켓과 사치세를 맞바꿀 수도 있다"고 밝힌 팀. 지라디가 희망을 보여준다면 든든하게 힘을 실어줄 것이다. 지라디는 부상만 없다면 필라델피아가 충분히 포스트시즌에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루이스 로하스 (메츠)
메츠는 카를로스 벨트란이 사인 훔치기에 휘말리면서 입장이 곤란하게 됐다. 사무국의 징계는 없었지만, 관련 증언들이 나오면서 여론이 나빠졌다. 결국 양측은 서로 합의하에 계약을 해지했다. 메츠는 공석이 된 감독 자리에 내부 승격을 하기로 결정. 지난 시즌 팀의 퀄리티 컨트롤 코치와 외야 인스트럭터를 겸했던 루이스 로하스(38)를 감독에 앉혔다.
메츠 마이너 팀에서 13년간 감독과 코치를 해온 로하스는 이미 준비된 감독이라는 평가다. 마이클 콘포토, 피트 알론소, 제프 맥닐 등 선수들도 로하스의 합류를 반기고 있다. 로하스가 이처럼 신뢰가 두터운 이유는 항상 두 귀와 마음을 열어두고 있기 때문. 콘포토는 로하스에 대해 "정말 개방적인 사람"이라고 말했다. 개성 있는 선수가 많은 메츠는 권위적인 감독보다 수평적 사고를 지닌 감독이 잘 어울린다. 한편 로하스는 최초의 도미니카공화국 출신 감독인 펠리페 알루의 아들이다. 강타자로 유명한 모이세스 알루의 이복동생이다. 아들이 감독이 된 소식에 기쁨을 감추지 못한 알루는 "루이스는 정말 올바르다. 야구를 존중하는 마음이 강하다. 경기에서 기만하는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뼈있는 소감을 전했다.
론 로니키 (보스턴)
알렉스 코라가 벨트란과 비슷한 처지에 놓이면서 보스턴도 계획에 없었던 감독 인선 작업에 착수. 외부 영입 대신 벤치코치 론 로니키(63)가 감독직을 이어받았다. 로니키는 일단 임시 감독으로 임명. 이는 현재 사무국이 2018년 팀의 사인 훔치기를 조사하고 있기 때문인데, 로니키가 무혐의로 밝혀질 경우 정식 감독이 될 것이라고 한다(로니키는 전자장비를 동원하지 않은 사인 훔치기도 한 적이 없다고 항변했다). 2011-15년 밀워키 감독을 지냈던 로니키는 한직과 요직을 모두 겪어본 숙련자다. 작은 일도 허투루 처리하지 않는 책임감을 갖추고 있다. 감독으로서 로니키에게 야구는 기본적으로 선수들이 하는 것이다. 이에 감독은 선수가 최대한 야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코라에 이어 무키 베츠와 데이빗 프라이스도 팀을 떠난 보스턴은 현재 다소 어수선한 상태. 로니키는 분위기부터 정리를 해줘야 한다.
더스티 베이커 (휴스턴)
역시 사인훔치기 파문으로 감독이 교체. 휴스턴은 팀의 추락한 이미지를 명망 높은 베이커(70)를 앞세워 개선하려는 심산이다. 정규시즌용 감독이라는 오명을 씻고 싶은 베이커도 휴스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뉴스쿨의 선두주자와 올드스쿨의 대표주자의 만남. 여러 측면에서 불협화음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기사제공 이창섭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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