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드센스
탬파베이 역사상 사이영상을 수상한 투수는 단 두 명. 2012년 데이빗 프라이스와 2018년 블레이크 스넬(사진)이다. 특히 스넬은 다승(21)과 평균자책점(1.89) 레퍼런스 승리기여도(7.4) 등의 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사실 2018년 스넬은 사이영상 후보에서 벗어나 있었다.
2011년 전체 52순위로 탬파베이에 입단. 2015년 올해의 마이너리그 투수가 된 스넬은 2016년 팀 최고 유망주로 올라서면서 큰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제구 때문에 애를 먹었다. 2016-17년 허용한 9이닝당 볼넷 수는 4.53개. 결국 스넬은 2017시즌 중반 마이너리그로 강등됐는데, 이 기간 동안 투구폼을 교정하면서 다소 안정을 찾았다. 2017시즌 최종전에서 7이닝 13K 무사사구 무실점 승리를 따낸 스넬의 마지막 10경기 성적은 5승1패 2.84였다(10경기 9이닝당 볼넷 수 3.02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듬해 스넬의 사이영상 수상은 이변이었다. 스넬은 다승과 평균자책점에서 손색이 없었지만, 이닝 수는 180.2이닝에 머물렀다. 스넬 이전 200이닝을 넘기지 못한 사이영상 선발 투수는 2014년 클레이튼 커쇼(198.1이닝) 뿐이었다(파업 시즌 제외).
같은 해 사이영상 투표 2위였던 저스틴 벌랜더는 스넬보다 33.1이닝을 더 던졌다(16승9패 2.52 214이닝). 그런데 탬파베이 담당으로 배정받은 <뉴욕데일리뉴스> 기자가 투표에서 벌랜더에게 4위표를 던졌다(총점 스넬 169 벌랜더 154). 물론 1위표를 받았다고 해도 결과는 달라지진 않았지만, 탬파베이 담당 투표자가 탬파베이 투수의 사이영상을 도운 격이었다. 그리고 벌랜더와 탬파베이의 악연도 재현됐다.
이런 식으로 입방아에 오른 것은 스넬의 귀에도 들어갔다. 자신의 성과에 자부심이 있었던 스넬은 논란의 수상자로 폄하되는 걸 매우 찝찝하게 여겼다. 이에 2019시즌을 앞두고 한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내가 수상자로 적합하지 않다는 말을 듣곤 했다. 불쾌하지만 뭐라고 해도 상관없다. 직접 보여주겠다"는 각오를 내비쳤다.
출발이 중요했다. 스넬의 개막전 상대는 휴스턴이었다. 이전 시즌 전체 헛스윙/스윙 비율이 34.8%로 전체 1위였던 스넬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휴스턴 타자들의 방망이를 유인하지 못했다. 휴스턴 타자들은 스넬이 던진 유인구에 속지 않았다. 어려움을 겪었던 스넬은 6이닝 3K 5실점 패전을 당했다. 공교롭게도 이 날 휴스턴 선발은 바로 스넬에게 밀렸던 벌랜더였다. 벌랜더는 7이닝 9K 1실점 승리투수가 됐다.
자존심을 구긴 스넬은 이를 갈았다. 볼배합을 더 다양하게 가져갈 것을 암시했다. 그러자 다음 세 경기에서 7이닝 13K 무실점(콜로라도) 6이닝 11K 1실점(화이트삭스) 6이닝 9K 무실점(토론토)의 압도적인 피칭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후 샤워실에서 조형물을 옮기다 오른쪽 네 번째 발가락이 골절되는 황당한 부상을 당했다.
지난 시즌에 대한 의지가 강했던 스넬은 무시무시한 회복 속도를 보였다. 스넬이 놓친 경기는 단 한 경기였다. 재빨리 불펜 피칭을 가졌고 부상자 명단에서 약 열흘만에 돌아왔다. 그러나 두 차례 연속 상대한 캔자스시티에게 3.1이닝 3실점(2자책) 3이닝 7실점으로 혼쭐이 났다. 다음 5경기에서 평균자책점 1.78로 감을 되찾은 듯 싶었는데, 6월부터 7월까지 성적이 곤두박질쳤다(9경기 3승3패 6.18). 그리고 왼 팔꿈치 유리체 제거 수술을 받는 것으로 사실상 시즌이 마감됐다.
스넬은 9월 중순에 복귀했다. 정규시즌 3경기(6이닝 3실점) 포스트시즌 3경기(5.1이닝 1실점)를 소화했다. 그러나 탬파베이는 스넬에게 많은 이닝을 맡기지 않았다. 스넬은 정규시즌 23경기 6승8패 4.29로 마감(107이닝). 1점대 평균자책점으로 사이영상을 수상한 투수가 이듬해 4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것은 스넬이 처음이었다. 사이영상 시즌 평균자책점과 다음 시즌 평균자책점 격차가 가장 큰 것도 지난해 스넬이었다.
사이영상 ERA & 이듬해 ERA 최다 격차
2018-19 : 블레이크 스넬 (+2.40)
2015-16 : 댈러스 카이클 (+2.07)
2009-10 : 잭 그레인키 (+2.01)
1972-73 : 스티브 칼튼 (+1.93)
스넬은 운이 따르지 않았다. 실제로 시즌 중 자신의 평균자책점이 급등한 것에 대해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2017년 인플레이 타율(BABIP)이 0.277였던 스넬은 사이영상에 성공한 2018년은 0.241로 하락. 그런데 지난해는 0.343까지 치솟았다. 이는 100이닝 이상 던진 메이저리그 투수 가운데 세 번째로 높았다(존 레스터 0.347, 케빈 가즈먼 0.344). 수비를 배제한 평균자책점(FIP)은 3.32로 떨어졌으며, 여기에 홈런을 중립화시킨 지표(xFIP)에서는 3.31로 좀더 낮아졌다. 특히 xFIP는 사이영상 시즌과 크게 다르지 않다(2018년 xFIP 3.16).
그렇다고 해서 스넬이 마냥 불운했던 것은 아니다. 본인이 부진한 책임도 있었다.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좌타자 상대 성적이었다.
스넬 좌타자 상대 성적 변화 (홈런/플라이볼)
2017 : .182 .267 .227 ops 0.494 (0.0%)
2018 : .135 .191 .222 ops 0.413 (7.4%)
2019 : .329 .365 .519 ops 0.893 (30.0%)
좌투수 vs 좌타자 상대 피안타율 (70타석)
0.452 : 마이크 몽고메리
0.390 : 닉 마거비셔스
0.344 : 네스토 코르테스 주니어
0.336 : 애덤 콘리
0.333 : 로비 얼린
0.331 : 에릭 라우어
0.329 : 블레이크 스넬
지난해 스넬은 좌타자를 제압하지 못했다. 그동안의 강세가 완전히 뒤집혔다. 리그에서 좌타자에게 가장 약했던 좌투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넬은 좌타자를 만나면 주로 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커브를 구사했다. 바깥쪽 하이 패스트볼과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더, 여기에 구속차를 보이는 커브로 좌타자들을 요리했다.
그런데 지난해 레퍼토리의 기반이 되는 패스트볼이 무너졌다. 좌타자에게 5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하는 패스트볼은 2018시즌 피안타율이 0.153에 불과했다(58.4%). 하지만 지난해 무려 0.410까지 나빠졌다(51.8%). 패스트볼이 이렇게 공략을 당하다보니 다른 공들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구위가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별 차이가 없었다(95.7→95.4마일). 회전수 역시 마찬가지였다(2365→2364회). 그러면 답은 좁혀진다. 데뷔 초반 스넬의 발목을 붙잡은 제구다. 스넬은 좋았던 시즌의 패스트볼 제구가 치기 편한 코스로 몰리는 경향을 보였다.아무리 구위가 강력해도 패스트볼이 일정하게 가운데로 들어오면 투수로선 어쩔 도리가 없다.
또 하나 달라진 점은 커브였다. 바깥쪽으로 춤을 췄던 커브도 이전과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2018시즌 피안타율이 0.091였던 커브 역시 피안타율이 0.214로 상승한 상태(슬라이더 피안타율 0.133→0.235). 패스트볼에 비해 사용 빈도가 떨어진 커브는 일시적인 변화였을 수는 있다. 그러나 차이가 극명했던 좌타자 상대 성적은 전체적으로 스넬의 들쑥날쑥했던 제구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높다.
명확한 문제가 있긴 했지만, 스넬은 반등할 확률이 높다. 투수 위력을 가늠할 수 있는 헛스윙/스윙 비율에서 지난해 38.3%를 기록. 이는 사이영상 시즌보다 높은 것으로, 지난해 선발 1위 게릿 콜의 헛스윙/스윙 비율은 37.3%였다(클레빈저 35.3%). 스넬은 탈삼진/볼넷 비율에서도 사이영상 시즌을 넘는 개인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2018년 3.45, 2019년 3.68).
부상과 부진으로 시즌을 망쳤던 스넬은 정상적으로 스프링캠프에 합류. 이번 스프링캠프를 통해 슬라이더를 더 다듬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뿐만 아니라 스넬은 지난해 수술을 받고 난 뒤 공의 움직임이 더 좋아졌다고 자신했다.
정상에서 내려온 스넬은 기로에 섰다. 과연 스넬의 진짜 모습은 어느 쪽일까. 이 궁금증을 올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기사제공 이창섭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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