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드센스
2년 연속 사이영상 최종 후보에 오른 류현진(33)이 한 해 끝자락에서 활약을 인정받았다. 한 시즌 최고 좌완에게 수여하는 워렌 스판 상의 주인공이 됐다.
사실 워렌 스판 상은 지난해 더 기대가 컸다.
지난해 류현진은 평균자책점 전체 1위에 오르는 등 좌완 중 가장 돋보이는 성적을 거뒀다(14승5패 2.32 182.2이닝 163삼진). 리그 상황이 감안되는 조정 평균자책점에서도 2위 그룹과 꽤 차이가 나는 1위였다. 레퍼런스 승리기여도는 마이크 마이너(7.8) 에두아르도 로드리게스(5.9) 패트릭 코빈(5.6)에 이은 4위였지만(bwar 4.8) 팬그래프 승리기여도는 코빈과 함께 좌완 1위였다(fwar 4.8).
2019 좌완 ERA+ 순위
179 - 류현진
144 - 마이크 마이너
138 - 패트릭 코빈
137 - 클레이튼 커쇼
126 - 에두아르도 로드리게스
하지만 수상자는 패트릭 코빈으로 선정됐다(14승7패 3.49 202이닝 238삼진). 코빈은 평균자책점에서 류현진에게 밀렸지만, 탈삼진과 이닝을 앞선 덕분에 가산점을 받았다. 사이영상 투표 10위 안에 들지 못한 투수의 첫 수상이었다.
지난해 아쉬움을 씻어낸 류현진은 역대 12번째 수상자가 되는 영광을 누렸다. 아시아 투수로는 최초(규정이닝을 넘긴 아시아 좌완이 별로 없었다). 팀 역사상 특출난 좌완이 없었던 토론토에서도 처음 나온 수상자로, 올해 류현진의 평균자책점 2.69는 규정이닝을 충족한 토론토 좌완 중 최고기록이기도 하다(1987년 지미 키 2.76). 이적 첫 시즌부터 팀 좌완 역사를 새롭게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워렌 스판 상은 1956년에 제정된 사이영상에 비하면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1999년부터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오클라호마 스포츠 박물관을 건립한 리차드 헨드릭스의 제안으로 만들어졌다. 헨드릭스는 지역 내 스포츠 관심을 고취시키는 동시에 오클라호마를 알리려는 목적으로 이 상을 신설했다. 워렌 스판을 내세운 건 여생을 오클라호마에서 보낸 스판이 사후에도 오클라호마에 안치됐기 때문이다.
스판은 시대를 풍미한 투수였다. 1942년에 등장했지만, 2차대전에 징집되면서 3년을 군에서 보냈다. 1946년에 돌아온 뒤 20년간 쉼없이 달렸다.
당시 메이저리그는 다승의 권위가 하늘을 찔렀다. 팀이든 투수든 많이 이기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다승의 시대에서 스판은 승리의 아이콘이었다. 통산 8번의 다승왕은 역대 최다 1위(피트 알렉산더, 월터 존슨, 밥 펠러 각 6회). 13번의 20승 시즌은 사이 영(16회)에 이은 2위였다(크리스티 매튜슨 13회). 42세 시즌에도 23승을 쓸어담은 스판은 통산 363승으로 최다승 역대 6위에 올라 있다. 좌완 투수 중 1위 기록이며, 라이브볼 시대에서도 1위에 해당한다.
라이브볼 시대 최다승 순위
363 - 워렌 스판
355 - 그렉 매덕스
354 - 로저 클레멘스
329 - 스티브 칼튼 <좌완 2위>
324 - 놀란 라이언
324 - 돈 서튼
스판에게 다승은 자부심이자 자긍심이며, 또 자존심이었다. 이에 워렌 스판 상은 기본에 충실했다. 다승과 평균자책점, 탈삼진을 기반으로 삼았다. 헨드릭스는 상의 가치를 알아주길 바라는 반면, 인기상으로 전락하는 건 원치 않는다고 했다.
워렌 스판상의 초대 수상자는 랜디 존슨이다. 존슨은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첫 4년간 수상을 놓치지 않았다. 같은 기간 4년 연속 사이영상을 휩쓸었기에 이견이 없었다. 존슨은 시상식이 열리는 오클라호마에 세 차례 참석했다. 특히 스판과 함께 자리를 빛낸 1999년에는 한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ESPN 짐 케이플에 의하면 스판은 존슨에게 어떤 시즌을 보냈는지 물어봤다고. 존슨이 자신의 성적을 가리켜 "270이닝에 완투를 12번 했습니다"라고 말하자, 스판은 "멋진 시즌이었군. 하지만 나는 매년 그렇게 했다네"라고 웃으며 답했다.
존슨이 독식하던 워렌 스판상은 2003년 새로운 수상자가 등장했다. 앤디 페티트였다. 그러나 앞서 존슨과 달리 페티트는 모두의 공감은 불러오지 못했다. 뛰어난 성적을 거둔 것은 맞지만 4점대 평균자책점이 결점으로 보였다(21승8패 4.02 208.1이닝). 실제로 사이영 투표에서도 제이미 모이어(21승7패 3.27 215이닝)가 페티트보다 더 많은 지지를 받았던 좌완이었다.
단, 페티트는 탈삼진에서 모이어를 비롯한 다른 후보들을 능가했다(페티트 180삼진, 모이어 129삼진). 물론 탈삼진은 투수 능력을 증명하는 지표다. 그런데 탈삼진에 높은 점수를 주는 건 스판을 기리기 위해서 만든 상과 다소 어울리지 않는다. 스판은 통산 9이닝당 탈삼진이 4.43개로 탈삼진에 특화된 투수는 아니었다.
2004년 요한 산타나(베네수엘라)는 비 미국인 출신으로 처음 워렌 스판 상을 거머쥐었다. 2005년에는 돈트레 윌리스가 페티트를 제치고 수상했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점은 당시 UPI가 총점을 매기는 집계 방식을 공개한 것이다.
Willis was first in wins, second in ERA and fifth in strikeouts among the left-handers who qualified, for a total of eight points.
UPI는 윌리스가 규정이닝 좌완 투수 가운데 다승 1위, 평균자책점 2위, 탈삼진 5위를 차지해 총점 8점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 계산에 따르면 페티트는 9점, 요한 산타나는 10점, 랜디 존슨은 12점이다. 하지만 이런 식이면 2003년 수상자는 총점이 더 낮았던 모이어였어야 했다(모이어 12점, 페티트 13점). 무엇보다 2005년 윌리스는 좌완 투수 중 탈삼진 5위가 아닌 9위였다.
2005년 좌완 탈삼진 순위
238 - 요한 산타나
211 - 랜디 존슨
208 - 덕 데이비스
176 - 크리스 카푸아노
174 - 스캇 캐즈미어
172 - 노아 라우리
171 - 앤디 페티트
171 - 배리 지토
170 - 돈트레 윌리스
이 합산이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 순위대로 점수를 부여하면 지난해 코빈과 올해 류현진의 수상은 맞아 떨어진다. 지난해 류현진은 총점이 16점으로 코빈(9점) 뿐만 아니라 에두아르도 로드리게스(10점)와 클레이튼 커쇼(12점)보다도 높았다. 평균자책점은 1위였지만, 다승 5위, 탈삼진 10위에 머물러 총점에서 손해를 봤다(코빈은 평균자책점 3위, 다승 5위, 탈삼진 1위).
올해 류현진은 평균자책점에서 댈러스 카이클(1.99)에 이은 2위였다. 다승에서도 카이클(6승)에 이은 3위로, 두 항목에서 카이클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카이클은 탈삼진에서 9위로 미끄러졌다. 반대로 류현진은 프램버 발데스(76개) 다음으로 많은 삼진을 잡아냈다(72개). 즉 류현진의 총점은 7점으로, 규정이닝 좌완 중 가장 좋았다. 참고로 이 합계라면 류현진의 대항마는 다승 1위, 평균자책점 3위, 탈삼진 4위의 시애틀 마르코 곤살레스(8점)였다.
2006년 요한 산타나는 워렌 스판 상 탈환에 성공했다. 현재까지 세 가지 항목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한 유일한 선수였다. 이후 CC 사바시아(3회)와 커쇼(4회)가 14번 중 7번을 나눠가졌다. 둘을 제외한 수상자는 아래와 같다.
2010 - 데이빗 프라이스
2012 - 지오 곤살레스
2015 - 댈러스 카이클
2016 - 존 레스터
2018 - 블레이크 스넬
2019 - 패트릭 코빈
2020 - 류현진
워렌 스판 상은 좌완만이 안을 수 있는 특별한 영예다. 하지만 정확한 수상 기준이 공개되지 않으면서 혼란을 빚을 때가 있었다. 보다 투명하고 공정한 시스템이 확립되어야 한다.
명석한 두뇌로 수싸움을 즐겼던 스판은 "타격은 타이밍, 피칭은 타이밍을 빼앗는 것"이라는 희대의 명언을 남겼다. 스판은 피칭의 정수는 힘이 아닌 기술이라고 생각했다. 스판의 투구관에 부합하는 투수의 첫 번째 수상이었다.
기사제공 이창섭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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