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드센스
1990년 9월15일. 시애틀 매리너스의 2번과 3번으로 나선 켄 그리피 시니어와 켄 그리피 주니어는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부자 백투백 홈런'을 1회에 때려냈다. 아버지는 만 40세, 아들은 만 20세였다.
1963년 9월16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는 그에 못지 않은 진기한 일이 벌어졌다.
샌프란시스코의 선발 좌익수는 윌리 매코비(HOF) 중견수는 윌리 메이스(HOF) 우익수는 펠리페 알루였다. 샌프란시스코가 8-3으로 앞선 7회말. 알 다크 감독은 매코비를 헤수스 알루로 교체했다(펠리페 알루 우익수에서 좌익수로 이동, 중견수 윌리 메이스, 우익수 헤수스 알루). 그리고 8회말에는 윌리 메이스를 매티 알루로 교체했다(펠리페 알루 좌익수에서 중견수 이동, 좌익수 매티 알루, 우익수 헤수스 알루). 이로써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한 팀 '3형제 외야진'이 만들어진 것이다(펠리페 통산 2101안타, 매티 1777안타, 헤수스 1216안타).
하지만 메이저리그에는 이에 못지 않은 진기한 3형제가 있다. 'Catching Molinas'라는 별명을 가진 몰리나 3형제다.
포수 형제가 없었던 건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디키 형제다. 형 빌 디키는 포수로만 17시즌(1928-1946)을 완주하며(심지어 37,89세 시즌에는 2차대전에 참전했다) 11번의 올스타와 7번의 월드시리즈 우승. 양키스 영구결번(8)과 함께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8살 어린 조지 디키 또한 메이저리그에서 6년을 뛰었다. 그러나 빌이 1789경기(WS 38경기) 조지가 226경기(PS 0경기)로 은퇴한 두 형제의 커리어는 애런 형제(행크 755홈런, 토미 13홈런)와 그윈 형제(토니 3141안타, 크리스 263안타) 만큼이나 차이가 컸다. 그에 비해 모두 포수로 뛴 벤지(46) 호세(45) 야디에르(38) 몰리나 3형제는 사이 좋게 두 개씩의 우승 반지를 가지고 있다.
2002년 애너하임 에인절스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꺾고 창단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그 해 에인절스의 주전 포수는 벤지 몰리나, 백업포수는 동생 호세 몰리나였다. 연년생인 둘은 정확히는 11개월 차이다. 2006년 3형제는 세 번째 우승반지를 챙겼다. 3형제의 막내인 야디에르가 23세 시즌에 월드시리즈 우승 포수가 된 것이다.
2009년 3형제 중 존재감이 가장 적었던 둘째 호세가 두 번째 우승반지를 따냈다. 호세는 양키스 호르헤 포사다의 백업 포수였다.
이듬해인 2010년. 이번에는 맏형 벤지가 두 번째 우승 반지를 얻었다. 벤지는 시즌 중반 샌프란시스코에서 텍사스로 트레이드가 됐는데(버스터 포지가 등장한 해다) 두 팀이 월드시리즈에서 만나 샌프란시스코가 우승한 것이다. 이로써 벤지는 준우승 팀 선수로서 반지를 받는 진기한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2011년 야디에르가 두 번째 우승 반지를 따냄으로써 3형제는 우승반지 숫자를 6개로 늘렸다.
몰리나 형제들의 WS
2002 - 벤지(우승) 호세(우승)
2004 - 야디에르(준우승)
2006 - 야디에르(우승)
2009 - 호세(우승)
2010 - 벤지(준우승) *
2011 - 야디에르(우승)
2013 - 야디에르(준우승)
*우승반지 획득
그렇다면 더 이상의 남자 형제는 물론 심지어 누나 또는 여동생도 없는 이 푸에르토리코 출신 3형제는 어떻게 해서 모두 포수가 됐을까.
아마추어 팀의 2루수이자 공장 노동자였던 아버지는 새벽 일찍 나가 10시간 넘게 일을 하고 오후 4시반이면 퇴근을 했다. 그리고 조금의 휴식도 없이 아들들과 공원으로 달려가 해가 질 때까지 캐치볼을 했다. 3형제의 회고에 따르면 아버지는 '프로 선수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한 번도 주지 않았다고 한다. "야구는 즐겁게"가 모토였던 아버지는 아들 셋이 모두 메이저리그 선수가 되고 나서도 공장 일을 관두지 않았고 40년을 근속한 후 은퇴했다.
벤지는 원래 포수가 아니었다. 그런데 에인절스 아카데미에 트라이아웃을 하러 갔다가 포수가 됐고 포수로 입단했다. 반면 호세는 12살 때부터 포수를 시작했다. 벤지는 2002년과 2003년 골드글러브를 따냈지만(2002년은 특히 이반 로드리게스의 11연패를 저지한 수상이었다) 수비는 호세가 더 뛰어났다. 호세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탬파베이에서 뛰며 포수 프레이밍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
12살 호세가 포수를 시작한 그 해. 몰리나 집안에서는 재밌는 일이 일어났다. 호세가 가지고 온 미트를 5살짜리 야디에르가 몇 번 가지고 놀더니 천재적인 포구 능력을 보여준 것이었다.
둘째형 덕분에 포수 조기 교육이 가능했던 막내는 2000년 4라운드 지명으로 세인트루이스에 입단했고, 2004년 21살의 나이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그리고 9개의 골드글러브와 네 개의 플래티넘 글러브를 따내는 역사적인 포수가 됐다(2011년부터 수상을 시작한 플래티너 글러브는 골드글러브 수상자 중에서 다시 선정해 양 리그에서 한 명씩에게만 준다).
몰리나는 통산 2001안타로 올 시즌을 마침으로써 포수를 주 포지션으로 하며 2000안타에 성공한 역대 12번째 선수가 됐다. 데뷔 팀에서 2000안타를 달성한 선수는 요기 베라와 자니 벤치, 조 마우어에 이어 네 번째인데, 앞선 세 명은 모두 2000안타 달성 전에 포지션 전환을 했다.
그러나 2005년부터 올해까지 16년 연속 세인트루이스의 개막전 포수였으며 등번호 4번이 영구결번이 확정적인 몰리나는 세인트루이스를 떠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몰리나는 2018년 3년 6000만 달러에 재계약하면서 계약이 끝나면 은퇴하겠다는 말을 했었는데 입장을 바꿔 "두 시즌 정도는 더 뛰고 은퇴하겠다"고 한 것이다.
몰리나 입장에서는 두 시즌을 더 뛰게 되면 경기 안타 2루타 등에서 포수 역대 5위 내에 진입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골드글러브 하나를 추가하면 이반 로드리게스(13개)와 자니 벤치(10개)에 이은 역대 세 번째 두자릿수 달성자가 된다(한편 내년이 38세 시즌인 몰리나가 골드글러브를 따내기 위해서는 마지막 두 개를 38-39세 시즌에 따낸 오마 비스켈의 기적이 일어나야 한다. 이반 로드리게스의 13번째이자 마지막 수상은 35세 시즌이었으며, 몰리나의 가장 최근 수상도 역시 35세 시즌이다).
물론 세인트루이스 입장에서는 몰리나를 'one team man'으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몰리나에게 더 의존했다가는 몰리나 이후가 참담해질 수 있다. 세인트루이스는 몰리나 다음 포수를 키워야 하는 입장이다.
이에 몰리나(38)는 애덤 웨인라이트(39)와 마찬가지로 팀을 떠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리고 뉴욕 양키스와 뉴욕 메츠, 2002년 몰리나 형제의 추억을 가지고 있는 LA 에인절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등 상당히 많은 팀이 몰리나의 풍부한 가을야구 경험(통산 101경기 101안타)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몰리나 입장에서 시장 상황이 나쁘지 않은 건 올해 메이저리그 팀들 특히 월드시리즈 우승에 도전하는 빅마켓 팀들이 무관중 경기로 인해 엄청난 재정적 타격을 입었다는 것이다. 이에 J T 리얼무토에게 1억 달러를 주는 것보다는 몰리나와의 단기 계약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과연 몰리나는 어느 팀으로 가게 될까. 새로운 팀에서 통산 세 번째 그리고 몰리나 집안의 7번째 우승반지를 챙길 수 있을까.
기사제공 김형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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