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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스코프] 샌디에이고 디넬슨 라멧의 딜레마

야구상식

by jungguard 2021. 1. 2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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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넬슨 라멧

 

8월5일 샌디에이고와 LA 다저스의 경기. 샌디에이고 선발 디넬슨 라멧은 5회까지 안타 없이 사사구 3개만을 내줬다. 6회 첫 두 타자도 무사히 처리했는데, 다음 타자 저스틴 터너를 몸맞는공으로 내보내더니 그 다음 타자 코디 벨린저에게 안타를 맞았다. 그리고 코리 시거에게 적시타를 내주고 교체됐다(5.2이닝 2실점).

 

노히터와 승리를 모두 놓친 라멧은 경기 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개인 기록을 달성하지 못한 것보다 팀 승리를 안겨주지 못한 것에 책임을 통감했다.

 

닷새 후 샌디에이고와 애리조나의 경기. 라멧은 지난 등판보다 압도적인 피칭으로 5이닝 9K 노히트를 이어갔다. 16타자를 상대로 출루 허용은 단 한 번 뿐이었다(5회 앤디 영 몸맞는공). 라멧은 6회에도 3자범퇴로 이닝을 마무리했다. 투구 수는 73개였지만, 아웃카운트도 9개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7회 선두타자 콜 칼훈을 넘지 못했다. 첫 슬라이더 두 개가 볼이 된 라멧은 바깥쪽으로 96마일 싱커를 던졌다. 칼훈이 자신있게 받아친 이 공은 좌측담장을 그대로 넘어갔다. 실점 직후 후속 두 타자는 잘 잡아낸 라멧은 6.2이닝 1실점 승리에 만족해야 했다. 볼넷 없이 두 자릿수 탈삼진을 잡아낸 샌디에이고 투수는 2017년 6월18일 이후 3년만. 3년 전 투수도 탈삼진 12개를 쓸어담았던 라멧으로, 라멧 이전 10K 무볼넷 샌디에이고 투수는 2015년 10월2일 이안 케네디다.

 

메이저리그 구단 중 유일하게 노히터가 없는 샌디에이고는 또 한 번 노히터 도전이 좌절됐다. 두 경기 연속 팀을 설레게 했던 라멧은 내심 노히터에 욕심을 냈다고 밝혔다. 승부를 최대한 빠르게 가져가면서 투구 수를 절약해 아웃카운트를 늘려가기 위해 노력했다(매니 마차도에게 노히터 도전을 암시하는 말도 했었다).

 

라멧은 9월8일 콜로라도전에서 시즌 두 번째 두 자릿수 탈삼진과 무볼넷 경기를 추가했다(7.2이닝 11K 무실점). 한 시즌에 이러한 경기를 두 차례 선보인 샌디에이고 투수는 1998년 케빈 브라운에 이어 두 번째였다(브라운은 모두 10K 경기). 9월15일 다저스전은 7이닝 11K 1실점, 9월21일 시애틀전은 6이닝 10K 1실점을 질주. 3경기 연속 두 자릿수 탈삼진을 해낸 샌디에이고 투수는 라멧이 네 번째다.

 

3경기 연속 두 자릿수 탈삼진 (샌디에이고)

 

1971 - 클레이 커비

1998 - 케빈 브라운

2007 - 제이크 피비 *2회

2020 - 디넬슨 라멧

 

*2007년 피비 4경기 & 3경기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이 독주 체제였던 반면, 내셔널리그 사이영상은 여러 후보들의 각축전이었다. 3경기 연속 두 자릿수 탈삼진으로 막판 스퍼트를 냈던 라멧도 가시권에 있었다. 9월21일 기준 라멧은 탈삼진 1위(89) 평균자책점 4위(2.07) 이닝 6위(65.1) 피안타율 3위(0.166)였다. 마지막 등판에 많은 것이 달려 있었던 라멧은 만약 5이닝 이상 무실점과 4경기 연속 두 자릿수 탈삼진에 성공하면 확률을 더 높일 수 있었다(5이닝 이상 무실점 시 평균자책점 1점대).

 

이미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이 확정된 가운데 라멧은 부담없이 마지막 등판에 나섰다. 샌프란시스코 원정 더블헤더 2차전에 출격. 그러나 이두근 통증을 호소하면서 씁쓸함을 남긴 채 마운드를 내려왔다(3.2이닝 4K 1실점). 라멧은 결국 사이영 투표 4위로 시즌을 마감했다(3승1패 2.09 69이닝 93삼진).

 

작년 7월5일 토미존 수술에서 돌아온 라멧은 무시무시한 구위를 앞세워 탈삼진의 화신이 됐다. 복귀 후 142이닝 198삼진. 탈삼진율 34.1%는 같은 기간 전체 6번째로 높았다.

 

작년 7/5 이후 탈삼진율 (100이닝)

 

39.0 - 벌랜더

38.8 - 콜

35.5 - 디그롬

34.6 - 다르빗슈

34.2 - 지올리토

34.1 - 라멧

33.7 - 비버

33.1 - 슈어저

 

올해 라멧은 지난해 95.9마일의 포심 평균 구속이 97마일로 빨라졌다. 100마일 포심도 5번 측정됐다(최고구속 100.6마일). 구속 상승과 더불어 유의미한 변화는 레퍼토리의 간소화다. 지난해 활용도가 높았던 커브(31.7%)와 실전에 대비했던 체인지업(1.5%)을 버리고 슬라이더에 올인한 것이다. 지난해 12.2%였던 슬라이더 구사율이 올해 무려 53.4%가 됐다. 투구 추적 시스템이 나온 2008년 이후 라멧보다 단일 시즌 슬라이더 구사율이 높았던 선발투수는 없었다.

 

단일 시즌 선발 슬라이더 구사율

 

53.4 - 디넬슨 라멧 (2020)

49.2 - 요울리스 차신 (2019)

44.8 - 타이슨 로스 (2015)

44.8 - 요울리스 차신 (2018)

42.7 - 크리스 아처 (2017)

41.6 - 크리스 아처 (2018)

 

더 놀라운 건 슬라이더 성적이다. 비중이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슬라이더 피안타율이 0.080(125타수10안타)으로 충격적이었다. 2008년 이후 슬라이더 500구 이상 던진 투수들 중 2위 기록. 1위는 2008년 카를로스 마몰이며, 라멧에 밀려 3위로 내려온 선수는 2015년 앤드류 밀러다. 라멧을 제외한 이 부문 상위권에 있는 투수들은 모두 불펜이다(올해 선발은 다른 시즌 불펜에 준하는 시즌이긴 했다).

 

단일 시즌 슬라이더 피안타율 (500구)

 

0.075 - 카를로스 마몰 (2008)

0.080 - 디넬슨 라멧 (2020)

0.092 - 앤드류 밀러 (2015)

0.093 - 켄 자일스 (2016)

0.094 - 앤드류 밀러 (2017)

0.100 - 페드로 스트롭 (2015)

0.104 - 브래드 핸드 (2017)

 

지난해 라멧은 좌타자를 상대로 살짝 고전했다. 피안타율이 0.242, 피OPS가 0.744였다(우타자 상대 피안타율 0.208, 피OPS 0.693). 그런데 올해는 좌타자 상대 피안타율이 0.133, 피OPS는 0.435로 떨어졌다. 슬라이더의 힘이었다. 바깥쪽을 찌르는 포심/싱커와 달리 몸쪽으로 파고드는 슬라이더가 좌타자들을 무력화시켰다.

 

스탯캐스트는 각 구종별 득점 가치를 매긴다. 특정 상황에서 던진 구종들이 득/실점에 얼마나 관여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무사 주자 없는 상황과 1아웃 만루에서의 삼진 기대 득점은 명백히 다르다). 이 지표에서 올해 가장 뛰어난 점수를 받은 구종이 라멧의 슬라이더(-19)였다. 라멧의 슬라이더에 이어 데빈 윌리엄스의 체인지업과 마르코 곤살레스의 싱커(이상 -13)가 뒤를 따랐다.

 

최근 메이저리그는 선발투수도 다양한 레퍼토리를 고집하지 않는다. 불펜야구가 대세로 정착했고, 오프너와 벌크 가이 같은 새로운 보직이 등장하면서 선발투수의 역할이 축소되고 있다. 이에 선발투수는 긴 이닝보다 계획된 이닝을 막아주는 것이 중요한 임무였다. 게다가 올해는 처음부터 모든 힘을 쏟아부어야 하는 단축 시즌이었다. 라멧이 과감하게 투 피치 투수로 변신한 이유다.

 

투 피치 투수가 반드시 장점만을 갖춘 건 아니다. 라멧은 8월5일 다저스전이 끝난 뒤 '세 번째 승부'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스스로를 투 피치 투수로 정의하면서 "모두가 나의 피칭 방식을 알고 있다. 세 번째 타석이 돌아오면 아무래도 공이 눈에 익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투 피치 투수의 한계를 인정한 것이다.

 

투 피치 투수는 정교한 제구가 필수적이다. 하나가 흔들리면 나머지 하나도 영향을 받는다. 8월10일 애리조나전에서 칼훈에게 홈런을 맞은 타석이 그랬다. 슬라이더가 빗나가면서 선택지가 확 줄어들었다. 라멧은 8월15일 애리조나전에서 또 칼훈에게 홈런을 맞았는데, 제구가 되지 않은 슬라이더 피홈런이었다.

 

슬라이더를 남발한 후유증도 겪었다. 라멧은 2017년에도 슬라이더 구사율이 38.9%로 가장 높았다. 그리고 이듬해 토미존 수술을 받았다. 지난해 아껴뒀던 슬라이더를 봉인 해제하자 시즌 막판에 또 찝찝한 부상을 당했다. 라멧이 포스트시즌에 돌아오지 못했던 샌디에이고는 와일드카드 시리즈는 통과했지만 디비전시리즈에서 가로막혔다. 야구에 만약은 없다고 하지만 확실한 선발투수가 있었다면 샌디에이고의 가을야구는 좀 더 오래 이어졌을 것이다.

 

라멧과 함께 부상으로 이탈한 마이크 클레빈저는 토미존 수술을 받았다. A J 프렐러 단장은 라멧은 클레빈저와 달리 수술이 필요한 상태는 아니라고 안심시켰다. 그러나 슬라이더를 적극적으로 던지면서 적신호가 켜진 것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슬라이더를 자유자재로 쓰는 대표적인 투수는 패트릭 코빈이다. 코빈의 슬라이더는 강력함보다 부드러움이 매력이다.

라멧의 슬라이더는 강력한 만큼 타자들에게 악마와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라멧에게도 악마의 유혹이었다. 건강하게 슬라이더를 다스리는 방법이 라멧의 미래를 좌우하는 열쇠로 보인다.

 

기사제공 이창섭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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