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드센스
로이 캄파넬라(Roy Campanella)
생년 일자 : 1921년 11월 19일 ~ 1993년 6월 26일
국적 : 미국. 출신지 :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
포지션 : 포수. 투타 : 우투우타
프로 입단 : 1948년 브루클린 다저스 입단.
소속팀 : 브루클린 다저스(1948~1957)
명예의 전당 헌액자
헌액 연도 : 1969년
헌액 방식 : 기자단(BBWAA) 투표. 투표 결과 : 79.41% (5회)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포수 중 하나로 꼽히는 선수로 브루클린 다저스(현 LA 다저스)에서 활동했으며 다저스의 역사상 두 번째 흑인 선수다.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통사고로 인해 일찍 은퇴했다. 비록 니그로 리그에서 시간을 보내 누적 성적면에서 뒤처지지만,, 내셔널리그 MVP를 3회 수상했으며 요기 베라와 함께 당대 최고의 포수였다.
별명은 이름을 딴 Campy
캄파넬라는 1921년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다. 캄파넬라의 아버지는 이탈리아 출신 백인이었으나, 캄파넬라의 어머니는 흑인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캄파넬라는 백인 아이들에게 흑인이라는 이유로 따돌림당했고 흑인 아이들로부터도 백인의 피가 섞여 있다는 이유로 따돌림당했다. 집이 가난했던 캄파넬라는 새벽에 일어나 우유배달을 하고 아버지를 도와 트럭에 야채를 실은 후에야 학교를 갈 수 있었고, 학교가 끝난 이후에는 신문배달과 구두닦이를 했다.
이러한 힘든 상황 속에서도 캄파넬라는 필라델피아 어슬레틱스에 입단하려는 꿈을 키웠으나 인종차별이 심했던 당시 미국에선 캄파넬라의 꿈은 불가능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캄파넬라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대신 16살에 니그로리그에서 프로선수생활을 시작했다.
메이저리그
1945년, 브루클린. 당시 재키 로빈슨을 데뷔시키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리키는 캄파넬라에게 다시 돌아올 때까지 어떤 팀과도 계약하지 말라고 당부를 전한 뒤 떠났다. 이후 시즌이 끝나고 캄파넬라는 다저스와 계약을 맺은 뒤 1948년 개막전 로스터에 포함되어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포수가 되었다.
그러나 캄파넬라는 선발로 11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하고 벤치만 달구다 마이너리그로 보냈으나, 1달 뒤 다시 메이저에 콜업되어 주전 포수로 뛰게 되었다. 캄파넬라는 데뷔 시즌인 1948년. 258 9 홈런 45타점을 기록했다.
풀타임 첫 해인 1949년에는. 287 22 홈런 82타점을 기록해 팀 동료인 재키 로빈슨, 아메리칸, 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이자 메이저리그 두 번째 흑인 선수인 래리 도비와 함께 메이저리그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1950년에는. 281타점을 기록하고 1951년에는. 325 33 홈런 108타점을 기록하며 그해 내셔널리그 MVP를 수상하며 1949년 재키 로빈슨에 이어 2번째로 MVP를 수상한 흑인 선수가 되었다.
1952년에는 부상에 시달리며. 269 22 홈런 97타점에 그쳤다. 그러나 다음 해인 1953년에는. 312 41 홈런 142타점을 기록하며 흑인 선수로는 최초로 2번째 MVP를 수상했다.
그러나 1954년에는 왼손 골절상과 함께 신경이 다쳐. 207 19 홈런 51타점에 그쳤으나 필사적으로 노력해서 1955년. 318 32 홈런 107타점을 기록하며 개인 통산 3번째 MVP를 획득했다.
그러나 이후 하향세가 시작되어 1956년. 219 20 홈런 73타점, 1957년 73타점, 1957년. 242 13 홈런 62타점에 그쳤다. 니그로리그 시절에 너무 많은 경기에 출장한 탓에 무릎이 일찍 망가졌고, 1952년부터 햄스트링 부상에 시달렸다.
캄파넬라는 시즌이 끝나면 부업으로 뉴욕 할렘에서 주류 가게를 운영했다. 그러던 1958년 1월 28일, 캄파넬라는 집으로 가던 도중 차가 빙판에 미끄러져 공중전화 부스를 들이받고 차가 전복되는 대형 교통사고로 목뼈와 척추 두 군데가 부러져 목 아래가 모두 마비되었다. 게다가 얼마 후, 캄파넬라의 아내는 그를 떠났다.
아내가 떠나고, 다시는 선수생활을 하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게 됐음에도 캄파넬라는 절망하지 않았고, 팬들이 찾아오면 밝은 미소로 팬들을 위로했다. 의사는 캄파넬라가 평생 병상에 누워있어야 하며, 10년 이상 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으나 캄파넬라는 피나는 노력 끝에 두 팔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1959년 5월 7일, 메모리얼 콜리세움에서 캄파넬라의 밤이 개최되어 시범경기임에도 93,103명이 모였다. 캄파넬라는 피 위 리즈가 끄는 휠체어를 타고 그라운드에 등장해 '내가 살아서 여기 있게 된 것에 신에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합니다'라고 말했다.
이후 캄파넬라는 다저스의 단장 보좌역, 스카우트, 홍보대사를 맡으며 다저스에 헌신하고, 1964년 새 아내를 만나 살다가 1993년 6월 26일, 향년 72세로 별세했다.
<LA다저스 볼티모어 오리올스 원정3차전>
2019년9월13일 LA다저스 볼티모어 원정3차전
다저스(95승53패) 4-2 볼티모어(47승99패) W 곤솔린(3-2 2.83) L 번디(6-14 4.99) S 잰슨(29/7 3.72)
왼 팔뚝 부상으로 12주를 날렸던 리치 힐(39)은 첫 두타자를 삼진처리. 그런데 이후 제구 난조에 빠지면서 1회를 버티질 못했다. 0.2 이닝 2K 1실점(2볼넷) 힐은 왼 무릎 내측인대가 좋지 않다는 후속 보도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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