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드센스
잭 루스벨트 "재키" 로빈슨(Jack Roosevelt "Jackie" Robinson)
생년일자 : 1919년 1월 31일 ~ 1972년 10월 24일
국적 : 미국. 출신지 : 조지아 주 카이로
출신학교 : UCLA 포지션 : 2루수, 1루수(루키시절). 투타 : 우투우타
소속 구단 : 니그로리그 - 캔자스시티 모나크스(1945) 인터내셔널리그 - 몬트리올 로열스(1946) 메이저리그 - 브루클린 다저스(1947~1956)
인종차별을 극복하고 미국을 바꾼 사나이로 평가받는 선수다. 1947년 그의 데뷔는 미국이 민권법을 제정하기 16년 전이고, 선거 관련 법안을 제정하기 18년 전이며, 미군에서 흑인을 전면 받아들이기로 결의한 것보다 1년 빠른 일이었다. 또한 말이 결의지 미군에서 흑인을 받아준 건 해리 S. 트루먼의 명령에 의해서였다. 이러한 업적으로 메이저리그 역사상 전무후무한 전구단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UCLA 출신으로 미식축구, 농구, 수영, 테니스, 육상 등 모든 종류의 운동에 뛰어났다. 재키 로빈슨의 형 매튜 매킨지 '맥' 로빈슨도 1936 베를린 올림픽 육상 200m 은메달리스트 출신이지만, 두 형제 모두 피부색 때문에 차별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에는 장교로 복무해 참전했지만 역시 인종차별과 맞서다가 면직 당하기도. 그리고 야구계로 뛰어들게 되었다.
흑인 선수를 데뷔시키고자 했던 당시 브루클린 다저스 단장 브랜치 리키에 의해 발탁되어 1947년 드디어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데뷔하게 되었다. 초기에는 4월 한달에만 두자리수에 가까운 몸에 맞는 공에 타석에서 1루에 갈때마다 상대팀 1루수의 발길질에 시달려야했고, 수비할때도 1루로 달려오는 타자가 로빈슨의 발목을 공격하는 일도 수차례 있었으며, 심판도 은근슬쩍 로빈슨에게 불리한 판정을 내리고, 언론들도 로빈슨에게 호의적이지 않아 "검은 파괴자", "검은 타이 콥"이라는 식으로 기사를 내보내고, 동료들로부터도 따돌림 당했지만, 피 위 리즈의 어깨동무 사건 이후 선수들은 물론 팬들도 그를 진심으로 포용하게 됐고, 결국 로빈슨은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마침내 메이저리그에 유색 인종들이 활약하는 역사적인 계기를 열었다는 것이 보통 알려져 있는 이야기이다.
단, 이후 공개된 인터뷰 등에서 피 위 리즈와의 어깨동무 일화가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으며, 관련 근거들도 꽤 신빙성이 있어 이 미담들에는 어느 정도의 각색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단순히 흑인이라고 비난만 받았던 것이 아니라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박수갈채를 받았다는 기록도 있다고 하니, 어느 정도 감안해서 볼 여지가 있다.
아무튼 이런 일화들과는 상관없이, 그는 흑인 인권 운동가로도 유명했으며, 여러모로 미국의 흑인 역사에서 하나의 이정표를 세운 인물임에는 분명하다.
인종차별의 벽을 깨부순 심볼의 의미가 너무 강해서 조금 언급이 덜 되는 편이기도 하지만, 그런거 다 떠나서 퍼포먼스와 기록측면에서도 야구 역사에 남을 타자였다. 통산 1382경기 5804타석에 나와 1518안타 137홈런 734타점 197도루를 기록했으며 ,311/.409/.474 OPS .883,OPS+132의 슬래시라인을 기록했다. 타석에서 로빈슨의 강점은 10시즌 통산 740볼넷/291삼진이라는 어마무시한 BB:K,삼진율이었다. 커리어 초기에는 2번타자로 뛰었으며 후반에는 4번타자로도 뛰면서 도루왕 2회,1949년 수위타자를 차지했다. 2루수로 맹활약하면서 신인상(1947)과 시즌 MVP(1949)도 수상했고, 팀의 내셔널리그 우승 및 월드시리즈 우승(1955)에도 기여하며 다저스의 뉴욕 전성기를 이끌었다. 통산 출루율이 4할이 넘고 wOBA가 4할을 넘으며 커리어 10년만에 WAR 57,BWAR 61.4로 통산 170위에 올라간, 10년만을 활약했지만 짧고 굵게 활약하며 그가 기록한 스탯은 역대 최고의 2루수 퍼포먼스를 논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으며 누구에도 밀리지 않는 수준이다.
실제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2루수를 꼽을 때 로빈슨은 5위 안에 무난히 들어간다. 훨씬 좋은 누적 성적을 기록한 명예의 전당 2루수들인 비지오, 알로마, 샌버그보다도 높은 평가를 받고, 로드 커류와 동급 혹은 그 이상으로 평가받는다. ESPN은 그를 조 모건보다도 위인 2위로 평가했다.
메이저리그에 28세에 데뷔해 통산 10시즌을 뛰면서 1382경기에 출전해 1518안타 137홈런에 타/출/장 .311/.409/.474을 기록했다. 특히 통산 BB-K가 740:291로 시즌 평균 29개의 삼진 밖에 당하지 않는 뛰어난 넘사벽급의 선구안과 컨택트를 과시했고, 2루수 수비도 뛰어난 선수였다. 메이저리그에 늦게 데뷔했지만 그것이 무색할만큼 대단한 실력의 선수였다. 훌륭한 성적임에는 틀림없지만 늦은 나이에 데뷔한지라 누적성적은 다른 명전 멤버들에 비해서는 확연하게 손해를 본 건 사실. 그러나, MLB의 모든 유색인종 선수의 시작점이라는 상징성과 그 무게를 이겨냈고, 결국 명예의 전당 헌액 후보 첫 해에 77.5%의 득표로 입성했다.
월드시리즈에는 6번 진출했으며 우승은 1955년 1회. 6번의 상대팀이 모두 뉴욕 양키스였다.
브루클린 다저스 마지막 시즌에 로빈슨은 1형 당뇨병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경기력도 현저하게 떨어져 선수생활에 더이상 흥미를 느끼지 않게 되었다. 다저스는 경기력이 떨어진 로빈슨을 라이벌인 뉴욕 자이언츠로 트레이드 했지만 본인이 고사하고 은퇴를 선언했다. 이미 은퇴 2년 전에 커피 체인인 Chock full o'Nuts의 사장과 1957년 시즌 후에 은퇴를 하고 체인의 이사 자리에 취임하기로 약속이 돼 있었다고 후일 공개된 은퇴 사정에서는 밝히고 있다.
다만 이 시기에 후배 선수의 잠재력을 발굴했는데, 바로 샌디 코팩스 . 그는 쿠팩스의 잠재력을 보고 중용하려고 했지만, 이 시기 쿠팩스가 그냥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막장이었던지라 당시 감독이었던 월터 앨스턴과 마찰을 자주 일으켰다.
은퇴 이후에는 사업을 하면서 흑인직원 고용, 직업훈련교육 지원등 흑인 일자리창출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특히 그의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젊은 날 당했던 차별 때문에 흑인인권 향상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와도 교분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지병이 되어버린 당뇨병 때문에 비교적 이른 나이인 53세에 세상을 떠났다.
재키 로빈슨 데이
원래 모든 선수들이 42번 저지를 입고 나오는 재키 로빈슨 데이의 아이디어가 나올 당시, 분위기는 굉장히 살벌했었다. 당시 한참 인종차별 협박에 시달리면서 경기에 나오던 재키 로빈슨이 "다음 경기에도 나오면 42번, 너 총으로 쏴버린다."는 정체불명의 살해협박을 받고 고통받을 때, 동료였던 외야수 진 허만스키(Gene Hermanski)가 "우리가 모두 42번을 입으면 누군지 모르겠지?"라는 말로 농담을 하며 로빈슨을 격려해준 일화가 시작이었다.
이후 수십년이 지난 2007년 켄 그리피 주니어가 4월 15일에 재키 로빈슨을 기리기 위해 42번 저지를 입는 것을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건의하여 실행했던 데서부터 시작, 이후 각 팀의 흑인 선수 한 명에게 4월 15일 경기에 42번을 입고 뛰게 하도록 하다가 현재는 '재키 로빈슨 데이'로 지정, 이 날만은 모든 선수와 코칭 스탭, 그리고 심판까지 등번호 42번 저지를 입고 경기에 임한다.
<LA다저스 뉴욕메츠 원정1차전>
2019년9월14일 LA다저스 뉴욕메츠 원정1차전>
다저스(96승53패) 9-2 메츠(76승71패) W 커쇼(14-5 3.05) L 신더가드(10-8 4.15)
추신수 선수성적 : 5타수 1홈런 3타점(0.262.363.451) 개인 타이기록에 해당하는 22호 홈런을 때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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