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드센스
휴스턴발 충격에 빠진 메이저리그
2018년 ALCS 1차전이 열린 보스턴 펜웨이파크. 보스턴 덕아웃 근처에서 수상한 행동을 하던 한 남성이 붙잡혔다.
소형 카메라를 가지고 허가 되지 않은 제한구역에 있었던 그는 휴대전화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이를 의심스럽게 생각한 구장 안전요원이 쫓아내려 하자 다른 휴스턴 직원이 나타나 말렸다. 이 남성은 디비전시리즈 때도 클리블랜드 프로그레시브에서 수상한 행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휴스턴은 이에 대해 오히려 보스턴이 부정행위를 하는지를 감시하기 위한 인력이었다고 해명했다.
2019년 ALCS 1차전이 열린 휴스턴 미닛메이드파크. 경기가 끝난 후 뉴욕 양키스가 강력하게 항의했다. 양키스는 특정 구종을 던질 때마다 휴스턴 덕아웃에서 휘파람 소리가 나는 것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양키스 선수들은 사인 노출을 막기 위해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내부고발자가 등장했다.
2015년 7월 밀워키에서 휴스턴으로 트레이드돼 2017년까지 휴스턴에서 뛰었던 투수 마이크 파이어스(34·오클랜드)는 2017년 휴스턴이 홈 구장 외야에 비밀 카메라를 설치해 상대의 사인을 훔쳤다고 주장했다. 카메라에 찍힌 화면을 덕아웃 근처 모니터로 확인한 후 특정 구종이 들어올 때마다 타자에게 소리를 통해 알려줬다는 것. 파이어스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들이 쏟아져 나왔다.
증거 영상은 2017년 에반 개티스 타석 때 시카고 화이트삭스 투수 대니 파쿠어가 체인지업을 던질 때마다 휴스턴 덕아웃에서 쓰레기통을 치는 듯한 소리가 반복해서 들린 것을 비롯해 한 두 건이 아니었다.
2017년 당시 휴스턴은 홈 경기에서 터지지 않는 타선으로 고민을 하고 있었다. 휴스턴이 창단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2017년은 절묘하게도 휴스턴 타선의 삼진율이 드라마틱하게 떨어진 해다.
휴스턴 타선의 삼진율 변화
2014 [삼진] 23.8% (ML 29위)
2015 [삼진] 22.9% (ML 29위)
2016 [삼진] 23.4% (ML 29위)
2017 [삼진] 17.3% (ML 1위)
2018 [삼진] 19.5% (ML 2위)
2019 [삼진] 18.2% (ML 1위)
파이어스가 특정한 해는 2017년이다. 하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2018년과 2019년에도 똑같은 불법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홈 구장에서 조직적인 사인 훔치기를 했다면 원정 구장에서도 다른 방법을 동원했을 가능성 역시 의심할 수밖에 없다.
휴스턴 홈/원정 승률 변화
2017 [홈] 0.593 [원] 0.654
2018 [홈] 0.568 [원] 0.704
2019 [홈] 0.741 [원] 0.580
휴스턴 홈/원정 OPS 비교
2017 [홈] 0.812 [원] 0.834
2018 [홈] 0.730 [원] 0.777
2019 [홈] 0.878 [원] 0.819
야구는 투수와 포수의 사인교환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사인을 훔치려는 노력은 늘 있어왔다.
포수는 2루에 주자가 있으면 사인을 복잡하게 낸다. 2009년 미네소타-디트로이트전에서는 2루주자 조 마우어가 저스틴 벌랜더-제럴드 레어드 배터리가 사인을 교환할 때마다 헬멧이나 코 등을 만져 타자인 제이슨 쿠벨에게 뭔가를 알려주는 듯한 모습을 보여 논란이 된 바 있었다. 2006년 WBC 때는 대회 직전에 소집된 미국 대표팀이 외우기 쉬운 사인을 가지고 나갔다가 곤욕을 치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인 훔치기는 매우 흔한 일이었으며 '당하는 쪽이 바보'라는 인식이 있었다. 다만 절대적으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사인을 훔치는 데 있어 허가되지 않는 장비를 동원하는 것이다.
1951년 정규시즌을 동률로 끝낸 뉴욕 자이언츠와 브루클린 다저스는 리그 우승 및 월드시리즈 진출권을 두고 세 경기짜리 플레이오프를 치렀다. 자이언츠는 최종 3차전에서 터진 바비 톰슨의 9회말 역전 끝내기 스리런홈런을 통해 다저스를 꺾었다.
그러나 '세계에 울려퍼진 홈런'(The shot heard 'round the world)으로 잘 알려진 이 홈런은 자이언츠가 홈 구장 폴로그라운드의 센터 쪽에서 망원경을 가지고 사인 훔치기를 해낸 결과였다. 당시 자이언츠가 훔쳐낸 사인은 불펜포수를 통해 타자에게 전달됐는데, 휴스턴 역시 구장이 너무 시끄러워 소리가 전달되지 않을 경우에는 같은 방법을 사용했다는 주장이 추가로 제기된 상황이다.
2005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에이스 마크 벌리는 텍사스 원정경기에서 7이닝 9피안타 7실점 패전을 당한 후 텍사스 구단이 외야 쪽에서 빛을 깜빡거려줘 타자에게 사인을 전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해 메이저리그 1위에 해당되는 260개의 홈런을 날린 텍사스는 특히 홈구장에서 가공할 만한 파괴력을 자랑했다. 텍사스는 벌리의 주장에 대해 펄쩍 뛰었다. 그날 경기에서 4타수 무안타 2삼진에 그친 필 네빈은 "벅 쇼월터 감독을 찾아가 왜 내 타석에서는 깜빡거리지 않냐고 따졌다"라며 응수하기도 했다. 한편 벌리는 2007년 텍사스를 상대로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다.
휴스턴이 조직적인 그리고 불법적인 사인훔치기를 한 게 맞다면 문제는 대단히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휴스턴이 3년 연속 100승을 달성한 팀이며 2017년 월드시리즈 우승 팀이자 올해 준우승 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165cm의 키로 31개의 홈런을 때려낸 호세 알투베 등 휴스턴 타자들의 만들어낸 업적에도 의심의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더 충격적인 것은 2017년 이런 식의 사인훔치기 시스템을 만든 세 명의 주역이 A J 힌치 휴스턴 감독과 당시 벤치코치이자 현재 보스턴의 감독인 알렉스 코라, 그리고 그 해 휴스턴에 합류했으며 뉴욕 메츠의 신임 감독이 된 카를로스 벨트란이라는 것이다(이 세 명은 사무국의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이것이 정말이라면 코라의 보스턴 또한 의심 대상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2017년과 2018년 월드시리즈에서 각각 휴스턴과 보스턴에게 졌던 LA 다저스, 2017년 2019년 리그 챔피언십시리즈와 2018년 디비전시리즈에서 각각 휴스턴과 보스턴에게 패했던 뉴욕 양키스는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가 된다(2017년 리그 MVP를 알투베에게 빼앗긴 애런 저지도 있다).
이 폭로가 있기 전까지만 해도 휴스턴은 티핑(투구습관)을 찾아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걸로 알려져 있었다. 2017년 벨트란이 다르빗슈 유의 습관을 찾아내 3,7차전에서 무너뜨린 것, 올해 디비전시리즈에서 휴스턴 타자들이 타일러 글래스나우(탬파베이)의 글러브 위치를 통해 패스트볼과 슬라이더를 구별해낸 것 등이 휴스턴의 업적으로 여겨졌다.
월드시리즈 6차전에서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워싱턴)는 1회 휴스턴 타자들이 마치 어떤 공이 들어올지 알고 있기라도 하듯 자신의 공을 받아치자 2회부터 공을 쥘 때 글러브를 흔드는 동작을 추가했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또한 워싱턴은 월드시리즈에서 노출 방지를 위한 대단히 복잡한 사인을 사용했다.
야구의 공정성에 치명타를 입힌 이번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확실한 조치가 필요하다. 먼저 사실임이 확인될 경우 휴스턴에게는 대단히 강력한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 그동안 사인 훔치기 논란이 있을 때마다 유야무야 넘어간 사무국의 태도가 지금의 사태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사인 훔치기 방지를 위한 새로운 기술의 도입이 필요하다. 2018년 챔피언십시리즈 기자회견 때 저스틴 벌랜더(휴스턴)가 했던 제안인 무선 통신 기기를 공식적으로 도입하는 것이다. 벤치와 포수 투수가 무선 통신을 통해 사인을 공유하면 외부로 새어나갈 수 없다는 게 벌랜더의 생각이다. 실제로 NFL은 도청에 대한 우려 없이 쿼터백과 미들 라인배커가 감독과 무선 통신을 통해 작전을 공유하고 있다.
이는 경기 시간 단축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메이저리그의 포스트시즌 경기 시간이 급격하게 늘어난 이유 중 하나는 사인 훔치기를 방지하기 위해 배터리가 2루주자가 없는 상황에서도 복잡한 사인을 주고 받았기 때문이었다.
최근 휴스턴을 둘러싼 논란은 마치 2007년 12월 미첼 리포트 속에 들어가 있던 로저 클레멘스의 이름을 보는 듯하다. 3년 연속 100패(2011-2013)를 당했던 팀이 불과 6년 만에 3년 연속 100승(2017-2019)을 달성한 휴스턴의 신화 역시 무너졌다.
김형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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