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드센스
10년 이상 메이저리그에서 뛴 선수가 은퇴 후 5년이 지나면 후보 자격을 얻는 명예의 전당은 투표인단의 75% 이상 지지를 받아야 한다. 5% 이상 기록하면 총 10번의 기회가 주어지지만, 5% 미만인 경우에는 바로 박탈된다. 한편 지난달 현대 야구 시대 위원회(베테랑위원회)를 통해 올스타 8회에 빛나는 포수 테드 시몬스와 선수 노조 초대 위원장 마빈 밀러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바 있다.
이번 명예의 전당 투표로 알 수 있는 몇 가지 사실들을 정리해봤다.
1. 만장일치는 없었다
데릭 지터의 명예의 전당 입성은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지터를 향한 관심사는 오직 만장일치 득표였다. 실제로 219명의 투표가 공개되는 동안 줄곧 만장일치를 이어오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러나 최종 결과 투표인단 397명 중 단 한 명의 선택을 받지 못함으로써 마리아노 리베라의 뒤를 따르진 못했다.
명예의 전당 최고 득표율
100% : 마리아노 리베라 (2019)
99.7% : 데릭 지터 (2020)
99.3% : 켄 그리피 주니어 (2016)
98.8% : 톰 시버 (1992)
98.8% : 놀란 라이언 (1999)
지터는 첫 도전에 영광을 이룬 57번째 선수. 모든 사람들이 명예의 전당을 확신했지만, 정작 본인은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부분은 2014년부터 첫 해 입성자가 계속 탄생하고 있다는 것. 전체 22.8%에 해당되는 선수들이 최근 7년간 쏟아졌다. 이 부문 최고 기록은 1988년부터 1995년까지 지속된 8년인데, 내년에는 대형 후보자가 없어 이 기록은 잡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4년 이후 첫 해 입성자 (13명)
2014 : 그렉 매덕스 / 톰 글래빈 / 프랭크 토마스
2015 : 랜디 존슨 / 페드로 마르티네스 / 존 스몰츠
2016 : 켄 그리피 주니어
2017 : 이반 로드리게스
2018 : 치퍼 존스 / 짐 토미
2019 : 마리아노 리베라 / 로이 할러데이
2020 : 데릭 지터
선수 시절 지터는 승리의 아이콘이었다. 월드시리즈 우승을 5번이나 이끌면서 양키스 황금 시대의 주역이 됐다. <엘리아스스포츠>에 따르면 지터가 뛴 정규시즌 2747경기에서 포스트시즌 가능성이 없었던 경기는 단 4경기 뿐이었다. 홈 경기는 2014년 9월26일이 유일했는데, 이 경기는 지터가 끝내기 안타를 친 홈 고별전이다.
비록 만장일치는 실패했지만 지터는 야수로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이는 명예의 전당 판단 기준에서 수비가 큰 걸림돌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터는 통산 디펜시브런세이브(DRS)가 -152일만큼 수치 상 수비가 매우 떨어졌다. 첫 만장일치 야수로서는 치명적인 결격사유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수비에서 감점을 준 투표자는 없었다. 브룩스 로빈슨, 아지 스미스, 루이스 아파리치오처럼 수비가 월등히 뛰어나면 장점이 될 수는 있어도, 수비력이 나쁘다고 해서 투표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이번이 세 번째 도전이었던 앤드루 존스는 역대 최고의 중견수로 손꼽히지만 득표율 19.4%로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지난해 만장일치의 성역이 깨지면서 또 한 번 만장일치 득표자가 나올지 주목됐다. 하지만 첫 만장일치 야수는 허락되지 않았다. 지터가 좌절되면서 만장일치 야수는 시간이 걸릴 예정이다. 2022년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배리 본즈와 로저 클레멘스의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높고, 2024년 애드리안 벨트레는 지터처럼 강력한 후보는 아니다. 가까이는 앨버트 푸홀스, 멀리는 마이크 트라웃까지 바라봐야 한다.
2. 최후에 웃은 래리 워커
워커(사진)는 힘겹게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마지막 10번째 도전에서 가까스로 성공. 이번 명예의 전당은 75%를 넘기기 위해서는 397명 중 298명의 선택을 받아야 했다. 워커는 최소 인원보다 6명이 많은 304명의 지지를 받았다. 캐나다 선수가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것은 퍼기 젠킨스에 이어 두 번째다.
마지막 도전 끝에 성공한 선수들
1967 : 레드 러핑 (86.9%)
1968 : 조 메드윅 (84.8%)
1975 : 랄프 카이너 (75.4%)
2009 : 짐 라이스 (76.4%)
2017 : 팀 레인스 (86.0%)
2019 : 에드가 마르티네스 (85.4%)
2020 : 래리 워커 (76.6%)
사실 성적만 두고 보면 워커는 진작 들어갔어야 했다. 17년간 기록한 통산 성적(.313 .400 .565 383홈런)은 지터보다 뛰어났다(지터 .310 .377 .440 260홈런). 지터는 타지 못했던 MVP를 1997년에 수상(153경기 .366 .452 .720 49홈런 130타점). 지터보다 골드글러브가 두 개 더 많았으며(7회) 승리기여도 또한 더 높았다(bWAR 워커 44.7 지터 42.4). 그러나 지터와 달리 소속팀이 마이너스 요인이 됐다. 전성기를 콜로라도에서 보낸 워커는 쿠어스필드를 쓴 타자라는 이유로 평가가 하락했다.
차이는 있었다. 워커는 콜로라도 시절 홈과 원정 성적이 꽤 달랐다(홈 592경기 .384 .464 .715, 원정 578경기 .280 .385 .514). 쿠어스필드에서는 그야말로 무법자였다. 그러나 콜로라도 시절만 홈에서 강점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친정팀 몬트리올과 황혼기를 함께 한 세인트루이스에서도 유독 홈에서 강한 면모를 드러냈다.
워커 소속팀별 홈 / 원정 성적 비교
몬트리올 : .286 .364 .500 / .278 .350 .468
카디널스 : .311 .429 .564 / .263 .346 .479
2014년 4번째 도전에서 오히려 득표율이 10.2%로 떨어졌던 워커는 6번째 도전까지도 득표율이 크게 상승하지 않았다(15.5%). 그런데 지난해 득표율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한 줄기 희망이 생겼다. 워커는 2016-20년 사이 도합 61.1%가 오르는 기적을 선보였는데, 이는 5년 기준 최대 인상폭이다(2015-19년 에드가 마르티네스 57.4%).
쿠어스필드는 분명 타자에게 유리하다. 하지만 쿠어스필드에서 뛰는 것이 잘못된 방법은 아니다. 워커가 부끄러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워커가 맺은 결실은 향후 콜로라도 타자들에게도 나침반이 될 전망이다.
3. 아직 오지 않은 실링의 시간
커트 실링은 아쉽게도 고배를 마셨다. 실링은 앞서 언급한 최소 인원에 20명이 모자랐다(278명). 그나마 득표율이 70%까지 높아진 것이 위안거리. 아직 두 번의 기회가 더 남은 실링은 내년 시즌 헌액이 유력하다.
실링의 득표율 변화
2013 : 38.8%
2014 : 29.2%
2015 : 39.2%
2016 : 52.3%
2017 : 45.0%
2018 : 51.2%
2019 : 60.9%
2020 : 70.0%
실링은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 모두 성공을 거둔 투수(정규시즌 216승146패 3.46, 포스트시즌 11승2패 2.23). 2001년 애리조나의 창단 첫 우승을 도운 데 이어 2004년과 2007년 보스턴의 월드시리즈 우승 숙원도 풀었다. 통산 3000탈삼진을 달성한 역대 18명 중 한 명으로(3116K) 1900년 이후 3000이닝을 던진 112명 가운데 탈삼진 볼넷 비율이 가장 좋다(4.38). 이 부문 실링 밑에 있는 사이 영(3.74) 마이크 무시나(3.58) 그렉 매덕스(3.37) 랜디 존슨(3.26)은 모두 명예의 전당 투수들이다. 사이영상을 수상했던 적은 없었지만 2위를 세 차례나 차지한 1등이나 다름없는 2등이었다.
이처럼 실링은 성적이 문제가 아니었다. 경솔한 언행 때문에 구설수에 자주 오르면서 스스로 이미지를 깎았다. 만약 실링이 보다 신중했다면 이미 명예의 전당 투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을 것이다.
본인이 처한 상황을 잘 알기 때문인지 실링은 명예의 전당 헌액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지난주 인터뷰에서도 올해 자신의 낙마를 내다봤다. 실링은 설령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뛰어난 선수들이 많다면서 개의치 않는 모습. 하지만 내년에 별다른 경쟁자가 없기 때문에 무난하게 75%의 벽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4. 희비가 엇갈린 동기들
'뜨거운 감자' 로저 클레멘스와 배리 본즈는 거의 제자리 걸음. 실링과 같은 8번째 도전이었지만, 간신히 60%를 넘어선 것에 만족해야 했다(클레멘스 61.0%, 본즈 60.7%). 2016년 마이크 피아자가 약물 고백에도 불구하고 명예의 전당에 오르자, 일각에서는 클레멘스와 본즈도 허락해야 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지난해 득표율이 각각 59.5%, 59.1%였던 것을 감안하면 남은 투표에서도 큰 반전은 없을 것이다.
8년차 동기 클레멘스와 본즈가 우울한 결과를 보인 반면, 3년차 동기 오마 비스켈과 스캇 롤렌(사진)은 눈에 띌만한 성과가 있었다. 2018년 첫 투표에서 37%를 받았던 비스켈은 지난해 42.8%에 이어 올해는 52.6%까지 상승했다. 롤렌은 더 극적이었다. 첫 투표에서 10.2%에 그쳤던 롤렌은 두 번째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 17.2%였다. 이 추세라면 승산이 없었는데, 올해 35.3%를 찍으면서 청신호가 켜졌다. 이는 워커(21.6%)와 팀 레인스(30.4%)의 3년차보다 높은 기록. 유격수와 3루수로서 훌륭한 수비를 자랑했던 비스켈과 롤렌은 더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하는 선수들이다.
5. 사라진 1년차 후보들
이번 명예의 전당 투표는 지터를 제외한 1년차 후보들에게 가혹했다. 바비 아브레유가 5.5%로 간신히 생존했을 뿐, 다른 16명은 5%조차 채우지 못했다. 화이트삭스의 중심타자로 통산 439홈런을 친 폴 코너코가 10명의 선택을 받았고(2.5%) 약물 복용을 인정한 제이슨 지암비는 초라한 득표율(1.5%)을 남겼다. 40-40클럽을 가입한 역대 4명 중 한 명인 알폰소 소리아노도 지암비와 득표율이 같았다.
누적 성적이 아쉬웠던 클리프 리는 득표율 0.5%. 이밖에 애덤 던, 브래드 페니, 라울 이바네스, J J 푸츠가 놀랍게도 한 명의 지지를 받았다.
※ mlb.com/디애슬레틱/ESPN/레퍼런스 등 참조
기사제공 이창섭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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