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드센스

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래리 워커, 명예의전당 오른 산 사나이(01.28)- 전문가

야구상식

by jungguard 2020. 1. 28. 00:49

본문

728x90

로키스 강타자 래리 워커

 

 

2020년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는 새로운 이정표가 만들어졌다. 콜로라도 로키스 출신 래리 워커가 명예의 전당에 오른 것이다.

 

워커는 마지막 10번째 투표에서 76.6%의 득표율로 75%의 헌액 기준을 넘었다. 2018년의 34.1%2019년의 54.6%에서 큰 폭으로 오른 것. 75%를 넘기려면 397명의 투표 참가자 중 298명의 지지가 있어야 했는데, 워커는 그보다 6명이 더 많은 304명의 지지를 받았다.

 

이로써 워커는 캐나다 선수로는 1991년 퍼기 젠킨스(4500이닝 3192K 2842263.34)에 이어 두 번째이자 캐나다 야수 최초로, 또한 콜로라도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20148월에 지정한 토드 헬튼의 17번이 팀의 유일한 영구결번인 콜로라도는 오는 420일 워커의 33번을 팀 두 번째 영구결번으로 만드는 행사를 가진다.

 

워커는 캐나다 역대 최고의 타자다. 1997년 캐나다 출신 최초로 리그 MVP가 됐으며(2006년 저스틴 모노, 2010년 조이 보토 추가) 유일한 캐나다 출신 홈런왕이다(1997). 캐나다 선수가 차지한 네 번의 타격왕 중 세 번을 해냈으며(나머지 하나는 2014년 저스틴 모노) 캐나다 선수가 따낸 9개의 골드글러브 중 7개를 만들어냈다(나머지 둘은 2007년 러셀 마틴과 2011년 조이 보토).

 

더 놀라운 것은 어린 시절부터 NHL의 골리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워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한 번도 야구에 전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캐나다 서부 밴쿠버 근교에서 성장한 워커는 고교 졸업 후 몬트리올 엑스포스에 입단했고(당시는 캐나다 선수가 드래프트 대상이 아니었다) 조지 브렛의 사부로 유명한 찰리 로(Lau)의 책을 보고 독학으로 역대 가장 부드러웠던 스윙 중 하나를 만들어냈다(테드 윌리엄스와 대척점에 있는 로의 타격 이론은 웨이트 시프트 시스템과 레벨 스윙 그리고 한 손 타격이었다). 그리고 콜로라도 애벌런치의 골리 패트릭 와(Roy)를 응원하는 것으로 하키에 대한 아쉬움을 달랬다.

 

좌타자인 워커는 우완(.316 .407 .586)과 좌완(.306 .385 .518)을 상대로 뛰어난 좌우 균형을 자랑했다. 워커는 1997년 올스타전에서 몬트리올 엑스포스 시절 동료였던 랜디 존슨이 자신의 머리 쪽으로 공을 날리자 헬멧을 거꾸로 쓰고 우타석으로 옮기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는데(그 장면을 보고도 미소 한 번 짓지 않은 존슨의 무표정이 포인트다) 워커가 2001414일 존슨을 상대로 날린 홈런은 존슨이 1997924일 짐 에드먼즈에게 한 경기 두 개를 맞은 이후 좌타자를 상대로 1299일 만에 내준 홈런이었다.

 

1960년 이후 데뷔한 선수 중 5000타석 이상을 나서며 3할 타율, 4할 출루율, 5할 장타율로 은퇴한 선수는 6. 워커와 함께 에드가 마르티네스, 프랭크 토머스, 치퍼 존스, 매니 라미레스, 토드 헬튼으로, 워커 마르티네스 토머스 존스는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현역은 마이크 트라웃과 조이 보토).

 

그러나 다른 콜로라도 출신 타자들처럼 워커에게 달린 꼬리표 역시 쿠어스필드 타자였다는 것이었다. 워커는 17년 중 10년을 콜로라도에서 뛰었는데 전성기가 그 10(1995~2004)에 해당됐다.

 

워커의 쿠어스필드 통산 OPS 1.172(.381 .462 .710)는 베이브 루스의 통산 성적인 1.164(.342 .474 .690)보다도 좋다. 워커는 199819992001년 타격왕에 올랐는데(2000년은 토드 헬튼) 콜로라도는 2002년부터 휴미더(습도조절장치)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워커는 쿠어스필드를 제외한 나머지 경기들의 통산 OPS 역시 조시 도널슨(미네소타)과 크리스찬 옐리치(밀워키)의 통산 성적과 거의 같은 수준인 0.873(.282 .372 .500)에 달한다.

 

워커가 쿠어스필드 출신임을 극복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비결은 그가 타격 만 뛰어난 야수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워커가 따낸 통산 7개의 골드글러브는 로베르토 클레멘테(12)와 윌리 메이스(12) 켄 그리피 주니어(10) 앤드류 존스(10) 스즈키 이치로(10) 알 칼라인(10) 토리 헌터(9) 배리 본즈(8) 짐 에드먼즈(8) 안드레 도슨(8) 등에 이어 역대 14위에 해당된다(골드글러브를 무더기로 수상한 쿠어스필드 타자라면, 데뷔 후 7시즌 동안 7개를 따낸 놀란 아레나도에게도 희망이 생긴다).

 

워커는 타격(batting runs) 주루(baserunning runs) 수비(defensive runs saved)에서 모두 역대 100위 안에 든 세 명 중 한 명으로, 나머지 둘은 배리 본즈와 윌리 메이스다. 워커는 수비가 대단히 까다로운 쿠어스필드의 외야수가 따낸 8개의 골드글러브 중 5개를 만들어냈다(나머지 세 개는 카를로스 곤살레스).

 

워커의 시대 가장 강력한 송구를 던질 수 있는 선수들은 라울 몬데시, 블라디미르 게레로, 호세 기엔 등이었다. 하지만 워커는 이들의 '난사'보다 더 공포스런 자로 잰 듯한 날카로운 송구를 던졌다. 가장 간결한 것으로 평가 받은 워커의 송구 동작은 미국의 어린 선수들의 교본이었다. 199749개의 홈런과 33개의 도루를 기록함으로써 콜로라도 최초의 30홈런 30도루 달성자가 된 워커는 또한 누상에서 뛰어난 판단 능력을 자랑했다(통산 383홈런 230도루).

 

뛰어난 스윙를 가진 파이브 툴 외야수가 등장하면 제2의 래리 워커 또는 제2의 짐 에드먼즈(통산 .284 .376 .527 393홈런)라는 찬사가 뒤따른다. 데뷔 당시 제이 브루스(현 필라델피아)가 그랬고 작 피더슨(LA 다저스)에 대한 기대도 그랬다. 하지만 무수한 제2의 래리 워커 중 실제로 워커가 된 선수는 찾기 어렵다.

 

1994년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질주가 선수노조의 파업으로 무산된 후 1995FA 계약을 통해 콜로라도에 입단한 워커는 콜로라도에서 입단 첫 해 이후로는 포스트시즌을 경험하지 못했다. 워커는 이에 대해 "가을 야구를 하고 싶지만 하키 경기를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20048월 워커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트레이드됨으로써 앨버트 푸홀스, 스캇 롤렌, 짐 에드먼즈, 에드가 렌테리아 등과 살인타선을 이뤘다. 워커는 월드시리즈(4경기 .357 .438 .929)를 포함한 포스트시즌 15경기에서 6홈런 11타점(.293 .379 .707)으로 대활약했지만 세인트루이스는 보스턴에게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2005년 세인트루이스는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했고, 워커도 우승반지 없이 17년의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38세의 워커가 목을 왼쪽으로 돌리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쿠어스필드의 가호 없이 기록한 마지막 시즌의 OPS0.886이었다(.289 .384 .502).

 

기사제공 김형준 칼럼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