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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토론토 에이스 데이브 스티브(02.24)- 전문가

야구상식

by jungguard 2020. 2. 24.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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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브 스티브

 

 

로저 클레멘스는 역사적인 투수였다.

 

1986년 스물세 살의 클레멘스는 첫 번째 사이영상과 함께 아메리칸리그 MVP가 됐다(254이닝 2442.48). 1971년 바이다 블루와 2011년 저스틴 벌랜더 사이 39년 동안, 리그 MVP가 된 선발투수는 1986년 클레멘스가 유일했다. 그 해 클레멘스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20탈삼진 경기를 만들어냈다.

 

1986년부터 1992년까지 7년 동안(23~29) 연평균 257이닝 bWAR 8.3을 기록했던 클레멘스는 1993년부터 1996년까지 4년 동안(30~33) 연평균 186이닝 bWAR 4.5로 한 계단을 내려왔다.

 

보스턴은 1993시즌이 끝나고 휴스턴과 클레멘스 트레이드에 합의했다. 휴스턴이 주기로 한 주요 선수는 크렉 비지오와 스티븐 핀리였다. 그러나 휴스턴 구단주의 거부로 합의는 취소됐다.

 

1996시즌까지 만들어낸 통산 1922590탈삼진이 보스턴 팀 역대 최고기록이었던 클레멘스는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242.2이닝을 던졌고 마지막 10경기에서 77.2이닝 2.09를 기록했으며, 919일에는 개인 통산 두 번째이자 메이저리그 역대 220탈삼진 경기를 만들어냈다(31998년 케리 우드, 42001년 랜디 존슨, 52016년 맥스 슈어저).

 

FA가 된 클레멘스에게 들어온 제안은 세 개였다. 보스턴의 42400만 달러, 양키스의 42800만 달러, 토론토의 33200만 달러. 클레멘스는 토론토를 택했다.

 

1997년 클레멘스(264이닝 292K 2172.05)1945년 이후 할 뉴하우저(디트로이트) 이후 처음으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아메리칸리그 투수가 됐다. 시즌 중 브라이언 맥나미에게 스테로이드를 구해달라고 한 이듬해에도 트리플 크라운에 성공함으로써(234.2이닝 271K 2062.65) 피트 알렉산더(1915-1916) 레프티 고메스(1930-1931) 샌디 코팩스(1965-1966)에 이어 역대 네 번째로 2년 연속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하지만 클레멘스의 2년 연속 트리플 크라운 수상은 토론토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역사가 됐다.

 

1977년에 창단한 토론토의 역대 최고 에이스는 그리고 토론토 팬들이 영원히 그리워할 선수는 2003년부터 2009년까지 7년 연속 개막전 선발을 맡았던 로이 할러데이다. 하지만 할러데이는 다승(148) 탈삼진(1495) 승리기여도(48.4)에서 모두 토론토 역대 2위다. 175승과 1658삼진 bWAR 56.9로 모두 1위에 올라 있는 데이브 스티브(Dave Stieb)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주 출신인 스티브는 외야수였다. 하지만 어깨가 강해 틈틈히 마운드에 올랐다. 그렇게 3년 동안 스티브는 17이닝을 던졌다. 외야수로서 스티브는 특별한 장점이 없는 선수였다. 어느날 스티브는 마운드에 올라 1이닝을 던졌다. 그런데 그 장면을 토론토의 스카우트가 지켜봤다. 1977년에 창단한 토론토는 1978년 드래프트에서 스티브를 5라운드에서 뽑았다. 그리고 투수로 키우기 시작했다.

 

스티브는 신기한 투수였다. 엄청난 배짱의 소유자였던 그는 강속구가 없는 데도 놀란 라이언과 로저 클레멘스처럼 몸쪽 하이패스트볼을 두려움 없이 던졌다. 덕분에 스티브는 5번이나 몸맞는공 리그 1위에 올랐다. 초기 포심-슬라이더 투수였던 스티브는 구종 습득에도 출충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싱커와 함께 본인이 '죽은 물고기'(dead fish)라는 별명을 붙인 커브 그리고 체인지업을 추가했다.

 

스티브의 첫 번째 불운은 토론토의 전력이 좋지 았았던 창단 초기에 뛰었다는 것이다(토론토는 역대 가장 뛰어난 두 에이스가 팀의 암흑기에 등장했다). 스티브는 바비 콕스 감독(1982~1985 재임)이 이끈 토론토에 나타난 첫 번째 에이스였다.

 

22-23세 시즌이었던 198012153.71(242.2이닝) 198111103.19(183.2이닝)를 기록한 스티브는 198238경기에 선발로 나서 19번을 완투하며 288.1이닝을 던졌다. 평균자책점은 리그 5위에 해당되는 3.25였지만 승패 기록은 1714패에 불과했다. 심지어 평균자책점 타이틀(2.48)을 차지한 1984년에도 승패 기록은 1413(265이닝)였다(몬트리올 엑스포스 안드레 도슨과 함께. 1983년 사진).

 

스티브의 두 번째 불운은 노히트노런이었다. 1988925일 클리블랜드전에 나선 스티브는 마지막 타자인 훌리오 프랑코의 내야 땅볼 타구가 불규칙 바운드 안타가 되는 불운으로 노히터를 놓쳤다. 다음 등판이었던 101일 볼티모어전. 스티브는 이번에도 92사까지 노히트를 이어갔다. 하지만 대타로 나선 짐 트레이버에게 안타를 맞고 또 주저앉았다. 통산 타율 0.227의 트레이버는 물방망이로 유명한 선수였다. 그렇게 스티브는 자니 반더미어에 이은 역대 2호 두 경기 연속 노히터 달성자가 아닌 두 경기 연속 92사에서 노히터를 놓친 최초의 투수가 됐다.

 

이듬해인 198985일 양키스전. 스티브는 대기록 달성을 또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이번에는 퍼펙트게임이었다. 그러나 연속 삼진으로 92사에 도달한 스티브는 마지막 타자 로베르토 켈리에게 2루타를 맞는 것으로 퍼펙트까지 날렸다. 퍼펙트가 92사에 날아간 투수는 2010년 아만도 갈라라가, 2013년 다르빗슈 유와 유스메이로 페티트, 2015년 맥스 슈어저까지 역대 13. 노히터 경기가 세 번이나 92사에서 중단된 투수는 스티브가 유일하다.

 

하지만 스티브는 포기하지 않았다. 199093일 클리블랜드전. 네 번째 도전 만에 마침내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것이다. 지독한 불운에도 1980년대에 올린 140승이 잭 모리스(162)에 이은 메이저리그 2위였던 스티브는 1990시즌을 마지막으로 토론토의 에이스 자리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1992년 팀의 창단 첫 월드시리즈 경기(1차전) 선발 마운드에 모리스가 오르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1992년 토론토의 포스트시즌 로스터에 등록되지 못한 스티브는 1993년을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뛰었다. 그리고 우승반지 한 개(1992)와 함께 은퇴했다. 1998년 마흔 살의 나이로 메이저리그에 돌아와 50.1이닝 4.83을 기록하기도 한 스티브는 통산 176승 토론토에서 175승을 거두고 캐나다 야구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명예의전당 투표 1회차 1.4% 탈락).

 

데이브가 낸 자서전의 제목은 '내일은 퍼펙트'(Tomorrow I'll Be Perfect)였다.

 

기사제공 김형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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