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드센스
2001년 월드시리즈가 루이스 곤살레스의 7차전 끝내기 안타와 마리아노 리베라의 블론,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우승으로 끝난 후 박찬호가 FA 시장에 나섰다.
야수는 제이슨 지암비(양키스 7년 1억2000만 달러 계약)와 자니 데이먼(보스턴 4년 3100만 달러 계약) 달러 등이 있었지만 투수는 2000년 226이닝(18승10패 3.27)과 2001년 234이닝(15승11패 3.50)을 던진 박찬호(29)가 독보적인 최대어였다. 결국 박찬호는 5년 6500만 달러 계약으로 텍사스 레인저스에 입단했다.
시계를 좀더 이전으로 되돌려보자.
텍사스의 사업가 톰 힉스(전 리버풀FC 공동 구단주)는 1995년 12월 8200만 달러를 지불하고 NHL 댈러스 스타스의 구단주가 됐다. 그리고 1998년 6월에는 메이저리그 구단 매매 가격 역대 2위에 해당되는 2억5000만 달러를 지불하고 텍사스 레인저스의 구단주가 됐다. 1989년 60만 달러를 보태고 텍사스의 공동 구단주 중 한 명이 됐던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는 1490만 달러의 배당금을 받았다.
힉스는 과감한 투자를 시작했다. 먼저 2000시즌이 끝난 후 '에이로드'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10년 2억5200만 달러라는 역사적인 계약을 맺었다. 2001년 6월에는 전체 5순위로 지명한 마크 테세이라에게 950만 달러의 메이저리그 계약을 쐈다. 2001시즌이 끝나고는 박찬호를 더했다. 로드리게스와 라파엘 팔메이로가 참석한 입단식에서 텍사스는 팬들에게 '새로운 에이스'를 소개했다. 에이로드 테세이라 박찬호는 모두 보라스 고객이었다.
힉스의 화끈한 씀씀이에 힘입어 2002년 텍사스는 개막전 연봉총액이 양키스(1억2600만)와 보스턴(1억800만) 다음으로 높은 1억500만 달러에 달했다.
문제는 힉스의 투자가 독단에 의해 결정됐다는 것이다. 포스트시즌 경험이 전혀 없는 팀인 텍사스 레인저스의 단장에 1994년 부임해 1996년 1998년 1999년 지구 우승을 이끌었던 덕 멜빈은 공격 야구에 한계를 느끼고 탄탄한 마운드의 팀으로 변신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에이로드 구매' 지시가 떨어지면서 모든 것이 꼬이기 시작했다. 힉스는 자신과 대립각을 세운 멜빈을 해임하고 존 하트를 클리블랜드에서 데려왔다. 박찬호 영입을 진행한 것은 덕 멜빈이 아니라 존 하트였다.
에이로드가 52홈런 135타점(.318 .399 .622) 팔메이로가 47홈런 123타점(.273 .381 .563)을 기록한 2001년. 텍사스는 아메리칸리그 홈런 1위, 득점 3위에 올랐다. 하지만 에이스 릭 헬링이 12승11패 5.17에 그친 마운드는 아메리칸리그 14팀 중 평균자책점(5.71)이 꼴찌였다.
박찬호 입단식에서도 기자들의 질문은 '마운드 추가 보강 계획'에 집중했다. 에이로드는 "팀이 2선발 투수를 영입할 계획이라면 지불 유예도 받아들이겠다"는 말을 했다. 이제 텍사스를 향한 모든 시선은 2선발이 누구냐에 모아졌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텍사스가 투수를 영입하는 대신 2년 2400만 달러 계약으로 후안 곤살레스를 복귀시킨 것. 이 역시 힉스의 지시였다. 곤살레스에게 팀 연봉총액의 10%를 쓰면서 텍사스의 마운드 추가 보강은 데이브 버바와 이라부 히데키, 정상급 마무리에서 사고뭉치로 전락한 존 로커에 그쳤다.
1990년대 텍사스의 간판타자였던 곤살레스는 1999시즌 후 디트로이트로 트레이드됐다. 스타 부재에 시달렸던 디트로이트는 2000시즌 초 곤살레스에게 8년 1억4000만 달러를 제시했다. 하지만 디트로이트 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곤살레스는 이를 거절했다. 그리고 클리블랜드와 1년 1000만 달러 계약을 맺고 FA 재수에 성공한 상황이었다(2001년 35홈런 140타점 .325 .370 .590).
2002년 텍사스 개막전 라인업
1. (좌) 프랭크 카탈라노토(DH)
2. (양) 칼 에버렛(CF)
3. (우) 알렉스 로드리게스(SS)
4. (우) 후안 곤살레스(RF)
5. (좌) 라파엘 팔메이로(1B)
6. (우) 이반 로드리게스(C)
7. (우) 케이브 캐플러(LF)
8. (좌) 행크 블레이락(3B)
9. (우) 마이클 영(2B)
트레이드를 통해 칼 에버렛을 데려왔으며 곤살레스까지 가세한 텍사스 타선은 실로 공포스러웠다. 1999년 클리블랜드가 마지막인 '1000득점 팀'이 재현될 거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곤살레스(70경기)와 '아이로드' 이반 로드리게스(108경기)가 부상에 시달리고 신인왕 후보 블레이락이 쓴맛을 본 텍사스 타선은 에이로드(57홈런 142타점 .300 .392 .623)와 팔메이로(.43홈런 105타점 .273 .391 .571)의 분전에도 득점 순위가 되려 5위로 내려앉았다.
박찬호 영입 역시 참담한 실패로 돌아갔다. 텍사스는 37살의 케니 로저스가 박찬호 대신 로테이션을 이끌었고(211이닝 13승8패 3.84) 헐값에 영입한 이스마일 발데스도 나쁘지 않은 활약을 했지만(147이닝 6승9패 3.93) 마운드 붕괴를 이겨내지 못했다.
박찬호 in 텍사스
2002 - 25경기 9승8패 5.75 (145.2)
2003 - 07경기 1승3패 7.58 (29.2)
2004 - 16경기 4승7패 5.46 (95.2)
2005 - 20경기 8승5패 5.66 (109.2)
vs오클랜드 - 11경기 0승7패 7.13
vs에인절스 - 8경기 1승6패 9.64
vs매리너스 - 8경기 5승1패 2.62
박찬호가 활약하던 당시 다저스타디움은 극단적인 투수 구장이었다. 타자들에게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오클랜드 콜리세움 못지 않게 넓은 파울 지역이었다. 하지만 이후 다저스타디움은 두 번의 내야석 증축을 거쳐 파울 지역이 좁아지게 됐고 중립에 가까운 구장이 됐다.
FA 시장에 나왔을 당시 박찬호의 다저스타디움 통산 평균자책점(2.98)과 원정경기 통산 평균자책점(4.77)의 차이는 무려 1.79에 달했다. 그리고 이는 2001시즌 내내 계속된 허리 부상과 함께 텍사스를 제외한 나머지 팀들이 박찬호 영입을 꺼리게 된 결과로 이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박찬호는 최고의 투수구장에서 최고의 타자구장으로 가게 된 것이었다.
한편 박찬호 시대와 비교하면 투수의 유리함이 많이 사라진 다저스타디움에서 뛴 류현진은 다저스타디움 통산 평균자책점(2.62)과 원정경기 평균자책점(3.35)의 차이가 박찬호(1.79)보다 크게 적은 0.73이다.
다시 텍사스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톰 힉스는 조지 스타인브레너 같은 구단주가 아니었다. 스타인브레너가 가끔 선수를 비난할지언정 인내심을 가지고 투자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과 달리, 힉스는 패배가 거듭될 때마다 특정 선수를 지목해 비난함은 물론, 심지어 시즌 개막 후 두 달이 지나기도 전인 5월말 "더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올 시즌이 레인저스에 관심을 쏟는 마지막 시즌이 될 것이다"라는 말을 해 팀의 사기를 더 떨어뜨렸다.
결국 힉스는 에이로드를 3년 만에 뉴욕 양키스로 넘겼고, 에이로드의 약물 사용이 공개됐을 때 가장 앞장서서 에이로드를 비난했다. 그리고 2010년 파산 절차를 거쳐 텍사스 구단주 자리에서 내려왔다.
2002년 박찬호와 2020년 류현진의 공통점은 스캇 보라스 고객으로 다저스를 떠나 새로운 팀으로 가게 됐다는 것. 1선발이 목마른 팀에 큰 돈을 받고 입단하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2002년 박찬호가 막대한 돈을 쓴 조급한 구단주가 있는 팀으로부터 당장의 성과를 요구 받은 반면, 토론토는 '류현진에게 원하는 것'에 대해 "180이닝"이라고 답한 피트 워커 투수코치의 말대로 당장의 화려한 성적보다는 건강한 출발을 기대하고 있다. 또한 스타 선수들과 노장들이 잔뜩 있었던 2002년 텍사스와 달리, 토론토는 유망주와 함께 이제 막 새로운 출발을 시작한 팀이다.
김형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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