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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MLB] 화려했던 케빈 브라운의 1997-1998(04.20)

야구상식

by jungguard 2020. 4. 2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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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브라운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1999-2000시즌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투수 최고의 백투백 시즌이라 할 수 있다.

 

페드로 마르티네스(bWAR 21.5)

 

1999 : 2342.07 (213.1 313K) bWAR 9.8

 

2000 : 1861.74 (217.0 284K) bWAR 11.7

 

약물시대가 절정이었던 당시 마르티네스는 통산 두 번째 300탈삼진과 함께 생애 유일한 트리플 크라운을 1999년에 만들어냈다. 그리고 2000년에는 조정 평균자책점(291) 피안타율(0.167) WHIP(0.74)에서 라이브볼 시대 선발투수 신기록을 달성했다. 특히 2000년에 기록한 평균자책점 1.74는 리그 평균이 4.92이고 2위 선수가 3.70(로저 클레멘스)인 리그에서 만들어낸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기록이었다(2년 연속 만장일치 사이영상 수상).

 

그렉 매덕스(bWAR 18.2)

 

1994 : 1661.56 (202.0 156K) bWAR 8.5

 

1995 : 1921.63 (209.2 181K) bWAR 9.7

 

파업으로 단축된 1994-1995시즌이 정상 일정의 79.6퍼센트에 불과했던 것이 가장 아쉬웠던 세 명은 1994년 타율 0.394에서 시즌이 중단된 토니 그윈과 연속 경기 출장 기록에서 68경기를 손해 본 칼 립켄 주니어 그리고 그렉 매덕스였다. 정상 시즌이었다고 가정하면 매덕스는 2년 동안 승리기여도 22.8515이닝을 기록할 수 있었다. 1994년의 조정 평균자책점 2711999년 마르티네스(291)에 이은 라이브볼 시대 2위 기록. 19952603위 기록에 해당된다.

 

특히 1994년 매덕스는 7월 시작 후 8경기에서 68이닝 7자책(ERA 0.93)을 기록하며 평균자책점을 무섭게 끌어내리던 도중 시즌이 중단됐다(1.881.56). 만약 시즌이 중단되지 않고 8경기를 더 나섰다면 라이브볼 시대 2위 기록인 1985년 드와이트 구든의 1.53을 넘어섬은 물론, 1968년 밥 깁슨의 1.12에도 가깝게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다. 1994년 매덕스는 메이저리그 유일의 200이닝 투수였는데 2위 척 핀리(183.1)와는 20이닝 가까이 차이가 났다(2년 연속 만장일치 사이영상 수상).

 

 

랜디 존슨(bWAR 20.8)

 

2001 : 2162.49 (249.2 372K) bWAR 10.1

 

2002 : 2452.32 (260.0 334K) bWAR 10.7

200120탈삼진 경기와 월드시리즈 MVP, 2002년 트리플 크라운 달성으로 더 풍성했던 2. 더 대단했던 점은 37-38세 시즌이었음에도 509.2이닝을 던지고 706개의 삼진을 잡아냈다는 것이다. 존슨이 2001년에 기록한 372개의 탈삼진은 스티브 칼튼의 종전 기록(286)을 크게 뛰어 넘은 37세 투수 최고 기록이었으며, 2002년의 334개 역시 칼튼의 275개를 경신한 38세 시즌 최고 기록이 됐다. 한편 최고령 300K1989년 놀란 라이언이 42세 시즌에 기록한 301개다.

 

2002년 존슨(38)37세 이상 투수 최고기록에 해당되는 승리기여도 10.7을 기록했다. 두 번의 10.0 이상 시즌을 34세 시즌 이후에 만들어낸 투수는 존슨이 유일하다. 존슨의 2001-2002년 이후 승리기여도(bWAR) 10.0 이상 투수는 2009년 잭 그레인키(10.4)2018년 애런 놀라(10.2) 두 명뿐이다(2002년 만장일치 사이영상 수상).

 

로저 클레멘스(bWAR 20.0)

 

1997 : 2172.05 (264.0 292K) bWAR 11.9

 

1998 : 2062.65 (234.2 271K) bWAR 8.1

 

클레멘스가 토론토에서 보낸 2. 1997년 클레멘스는 아메리칸리그 투수로는 1945년 할 뉴하우저(디트로이트) 이후 처음으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으며, 이듬해는 피트 알렉산더(1915-1916) 레프티 그로브(1930-1931) 샌디 코팩스(1965-1966)에 이어 역대 네 번째로 2년 연속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그러나 클레멘스가 1998시즌 중반부터 금지약물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개인 트레이(브라이언 맥나미)의 주장이 200712월 미첼 리포트를 통해 발표됐다(1998년 만장일치 사이영상 수상).

 

비록 사이영상 수상은 없었지만 그에 못지 않게 화려하게 빛났던 백투백 시즌이 있다. 케빈 브라운의 1997-1998시즌이다.

 

케빈 브라운(bWAR 15.6)

 

1997 : 1682.69 (237.1 205K) bWAR 7.0

 

1998 : 1872.38 (257.0 257K) bWAR 8.7

 

 

브라운은 조지아주 출신. 하지만 고교 시절 무명이었던 그에게 프로 팀의 지명은 물론 대학 팀의 장학금 제안도 들어오지 않았다. 공부를 잘했던 브라운은 조지아공대 기계공학과에 진학한 다음 야구 팀에 들어갔다. 그리고 에이스가 됐다. 브라운은 고향 팀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입단하는 게 꿈이었다. 하지만 1986년 드래프트에서 5순위 애틀랜타에 한발 앞서 브라운을 전체 4순위로 지명한 팀은 텍사스 레인저스였다(애틀랜타 켄트 머커 5순위 지명).

 

다승 이닝 리그 1(265.2이닝 21113.32)에 오른 1992년을 제외하면 특별한 존재감이 없었던 브라운은 FA가 된 1996년 플로리다 말린스와 3년 계약을 맺고 본격적인 질주를 시작했다.

 

'하드 싱커' '헤비 싱커' 등의 이름이 붙었으며 최고 구속이 96마일에 달한 브라운의 싱커는 타자들에게 볼링공을 치는 것 같은 고통을 안겨줬다. 싱커의 무브먼트는 포수가 잡기 어려워할 정도였다. 193cm의 장신이었던 브라운은 넓은 어깨와 비정상적으로 긴 팔을 가지고 있어 엄청난 윙스팬(wingspan)을 자랑했다. 덕분에 브라운은 남보다 공을 더 끌고나와 던질 수 있었으며 노모 히데오를 닮은 트위스트 딜리버리를 통해 타자들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1996년 브라운은 내셔널리그 평균자책점 1위에 올랐다(233이닝 17111.89). 유일한 아쉬움은 1996년이 존 스몰츠의 최고 시즌이었다는 것(253.2이닝 2482.94). 브라운의 평균자책점은 스몰츠보다 무려 1.05가 낮았지만 기자들은 7승을 더 따낸 스몰츠의 손을 들어줬다(1위 스몰츠 26, 브라운 2).

 

1997611일 브라운은 샌프란시스코를 상대로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다. 821-2스트라이크에서 마빈 버나드를 맞히지 않았다면 퍼펙트게임이 될 수 있었다. 1997년 브라운은 감기몸살에도 샌프란시스코를 만난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서 7이닝 1실점 승리를 따냈다. 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도 1차전 그렉 매덕스, 6차전 톰 글래빈과의 선발 대결에서 모두 승리해 플로리다가 사이영 트리오의 애틀랜타를 꺾고 월드시리즈에 오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1995년 우승, 1996년 준우승 팀인 애틀랜타는 3년 연속 월드시리즈 진출이 무산됐다).

 

그러나 1997년 가을의 주인공은 브라운이 아니라 포스트시즌 4승을 따낸 쿠바 신인 리반 에르난데스였다. NLCS 5차전 매덕스와 대결에서 15K 1실점 완투승으로 팀의 2-1 승리를 이끌고 스타 탄생을 알린 에르난데스는 짐 릴랜드 감독에 의해 월드시리즈 1차전 선발투수로 낙점됐다. 그리고 월드시리즈 두 경기에서 25.27이라는 인상적이지 않은 성적에도 3홈런 9타점의 모이세스 알루(.321 .387 .714)를 제치고 시리즈 MVP가 됐다.

 

브라운은 우승 후 점포정리세일을 한 플로리다에 의해 1998년 샌디에이고로 트레이드됐다(플로리다 단장 데이브 돔브로스키, 샌디에이고 단장 케빈 타워스). 플로리다는 1루수 데릭 리를 받았다(리는 훗날 최희섭과 교환돼 시카고 컵스로 갔다). 1998년 브라운은 완벽한 FA 준비를 마쳤다.

 

브라운은 257이닝 1872.38을 기록함으로써(bWAR 8.7) 229이닝 2062.47을 기록한 톰 글래빈(bWAR 6.1)보다 더 좋은 성적을 만들어냈다. 글래빈보다 2승이 적었지만 탈삼진은 100개가 더 많았다(브라운 257삼진, 글래빈 157삼진). 문제는 샌디에이고 마무리 트레버 호프먼 역시 53세이브/1블론 1.48이라는 최고의 시즌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결국 브라운은 1위 표 8장을 얻고 11장의 글래빈과 13장의 호프먼에 이어 3위에 그쳤다.

 

1998년 포스트시즌은 브라운을 위한 무대가 되는 듯했다. 브라운은 휴스턴의 렌탈 선수로 참가한 랜디 존슨과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서 격돌했다. 그리고 8이닝 16K 무실점(2안타 2볼넷)이라는 파괴적인 피칭으로 존슨에게 8이닝 9K 2실점(9안타 1볼넷) 패전을 안겼다. 포스트시즌 16개의 삼진은 밥 깁슨이 1968년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 기록한 17개 최고기록에 하나가 모자랐다.

 

브라운은 애틀랜타를 만난 챔피언십시리즈 2차전에서는 11K 완봉승 달성함으로써(글래빈 6이닝 6K 1실점 패전) 1997년에 이어 다시 한 번 애틀랜타의 발목을 잡았다. 비록 월드시리즈에서는 1997년에 이어 또 부진했지만, 1998년 뉴욕 양키스(114)는 꺾을 수 있는 팀이 아니었다.

 

시즌이 끝난 후 33세 브라운과 34세 존슨이 FA 시장에 나왔다. 커리어는 1995년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투수인 존슨이 훨씬 화려했다. 그러나 최근 3(1996~1998) 만 놓고 보면 존슨(519이닝 bWAR 14.9)은 브라운(727이닝 bWAR 23.5)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브라운의 에이전트인 스캇 보라스는 역대 최고 대우를 요구했다.

 

 

스몰 마켓 팀(몬트리올 엑스포스) 출신 케빈 말론이 단장으로 온 LA 다저스는 존슨을 영입 1순위로 정했다. 하지만 애리조나와 큰 차이가 없는 제안을 했다가 애리조나에게 존슨을 빼앗겼다. 캘리포니아주의 세금 체계와 함께 존슨의 가족이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에 살고 있었음을 고려하면 다저스는 애리조나가 제시한 45200만 달러보다 더 좋은 제안을 했어야 했다.

 

새 구단주인 FOX로부터 받은 두터운 수표책을 어떻게든 써야 했던 말론은 결국 브라운에게 71500만 달러를 쏨으로써 브라운을 메이저리그 최초의 1500만 달러 연봉 선수로 만들었다.

 

다저스에서 브라운의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1999년 브라운은 252이닝과 함께 1893.00을 기록했으며, 35세 시즌인 2000년에는 230이닝과 함께 내셔널리그 평균자책점 1위에 올랐다(1362.58). 하지만 브라운은 애리조나에서 폭주를 하는 존슨에 가려졌으며 늘 비교를 당해야 했다.

 

2001년 부상을 당한 브라운(박찬호가 대신 개막전에 나가 7이닝 7K 무실점 역투로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다)에게 악마의 손길이 다가왔다. 포수 폴 로두카가 부상 회복에 도움이 된다며 인간성장호르몬 사용을 제안한 것이다. 결국 브라운은 200712월에 발표된 미첼 리포트에 이름을 올렸다.

 

2년 동안 부상으로 주춤했던 브라운(39)2003211이닝 1492.39를 기록하고 살아나자 뉴욕 양키스가 제프 위버와 옌시 브라조반을 주고 데려갔다. 하지만 핀스트라이프를 입은 브라운이 양키스 역사에 남은 장면은 2004년 리버스 스윕 때 7차전 선발로 나섰다가 1회 데이빗 오티스에게 투런홈런을 맞고 21사 만루에서 교체된 것이었다(브라운에 이어 올라온 하비에르 바스케스가 자니 데이먼에게 만루홈런을 맞음으로써 경기는 0-6이 됐다).

 

브라운의 불운은 그가 최고의 활약을 했던 1996년부터 2000년까지(연평균 bWAR 7.3)가 괴물들의 시대였다는 것이다. 또한 너무 많은 돈을 받게 됨으로써 나쁘지 않은 활약(7bWAR 22.8)을 하고도 비효율적인 선수의 대표격이 됐다. 브라운은 1997년 플로리다의 월드시리즈 우승과 1998년 샌디에이고의 월드시리즈 진출을 통해 '우승 청부사'라는 타이틀을 거의 손에 넣을 뻔했다. 하지만 정작 월드시리즈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해 그마저도 이루지 못했다(WS 4경기 36.04).

 

여기에 (폴 로두카의 유혹이 있었다고는 하나) 금지약물이라는 잘못된 선택을 함으로써 그가 기록한 통산 승리기여도 67.8(스몰츠 69.0)을 기억하는 사람은 얼마 남지 않게 됐다.

 

1991~2002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1991 - 톰 글래빈

 

1992 - 그렉 매덕스

 

1993 - 그렉 매덕스

 

1994 - 그렉 매덕스

 

1995 - 그렉 매덕스

 

1996 - 존 스몰츠 (브라운 2)

 

1997 - 페드로 마르티네스

 

1998 - 톰 글래빈 (브라운 3)

 

1999 - 랜디 존슨

 

2000 - 랜디 존슨

 

2001 - 랜디 존슨

 

2002 - 랜디 존슨

 

김형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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