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드센스
이틀간 열렸던 2020년 아마추어 드래프트가 막을 내렸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5라운드로 축소 진행됐다(2021년 20라운드). 지명을 받지 못한 선수들은 개별적으로 구단과 계약할 수 있지만, 보너스 2만 달러를 넘지 못한다.
이렇게 시스템이 무너진 것은 1965년 드래프트가 시작된 이래 처음. 모든 리그가 중단되면서 선수 평가 기간과 자료가 충분하지 않았고, 그만큼 변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았다. 가뜩이나 힘든 한 해 농사에 비바람이 쓸고 지나간 것. 이에 이번 드래프트는 초반부터 대혼란에 빠졌다. 각 매체에서 이루어진 가상 드래프트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다시는 없을 올해 드래프트에서 주목해야 될 사실들을 정리해봤다.
남다른 전체 1순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가 스펜서 토켈슨(20)을 전체 1순위로 뽑은 것은 전혀 놀랍지 않은 일. 토켈슨은 드래프트 이전부터 유력한 전체 1순위 후보였다. 애리조나주립대 출신으로 선배 배리 본즈의 시즌 홈런 기록을 갈아치운 토켈슨은 완성도가 높은 타자다. 정확성은 물론 파워와 선구안도 겸비해 한 세대마다 나올 재능이라고 전해진다.
1루수가 전체 1순위를 차지한 것은 1967년 론 블롬버그, 1977년 해롤드 베인스, 2000년 애드리안 곤살레스에 이어 4번째. 앞선 세 선수는 고교 졸업자로, 대학 1루수의 전체 1순위는 토켈슨이 처음이다. 또한 블롬버그, 베인스, 곤살레스와 달리 토켈슨은 우타자다. 운동 능력과 차별화를 중시하는 최근 트렌드에 적합하지 않은 유형이다. 달리 말하면 토켈슨의 타격 재능이 그 정도로 엄청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디트로이트가 토켈슨을 3루수로 키우겠다고 밝힌 것. 대학 시절 가끔 외야수로 출장했지만, 멀티 포지션을 거의 본 적이 없는 토켈슨이 잘 소화할지는 의문이다. 물론 디트로이트는 과거 프린스 필더를 1루수로 쓰기 위해 미겔 카브레라를 3루로 보낸 적이 있다. 하지만 잘못된 선택이었고, 갈수록 수비 지표가 세밀해지고 있는 메이저리그에서 수비를 저버리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무엇보다 유망주에게 수비 부담을 주는 것 자체가 위험한 도박이다. 토켈슨의 타격 재능이 확실하다면, 강점을 극대화시키는 편이 나을 것이다. 한편 이번 드래프트를 주관한 스카우팅 디렉터 스캇 플레이스와 특별 보좌 앨런 트래멀은 코메리카파크를 홈으로 쓰는 환경이 불리할 것이라는 시선에 대해 "코메리카파크는 큰 구장이지만, 그를 억누를만큼 크진 않다"고 전했다.
판을 뒤흔든 볼티모어
볼티모어는 올해 가장 많은 보너스풀을 책정받은 팀. 총 예산 1389만4300달러는 전체 1순위 지명권을 확보한 디트로이트(1332만5700달러)보다 많았다. 볼티모어로선 최대한 금액을 분산시켜 하위 라운드에서도 잠재력이 높은 유망주들을 붙잡고 싶었다. 그러려면 높은 순번에서 피해를 감수하는 언더슬롯 전략을 가져가야 했다.
볼티모어의 전략이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다. 지명권마다 배정된 슬롯 머니가 생긴 2012년, 휴스턴이 이미 이 방법으로 대박을 터뜨린 바 있다. 과소평가된 카를로스 코레아를 1순위로 뽑아 슬롯 머니를 아낀 대신 41순위 랜스 매컬러스 주니어에게 넉넉한 계약금을 안겨줬다. 당시 휴스턴에서 코레아를 추천한 스카우팅 디렉터가 현 볼티모어 단장 마이크 엘리아스다. 엘리아스는 어차피 미래가 불확실한 자원이라면 S급 한 명보다 A급 두 명을 확보하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5라운드로 제한된 이번 드래프트에서도 엘리아스의 지론은 변하지 않았다. 전체 2순위로 헤스턴 커스태드(21)를 데려왔다. 커스태드는 촉망받는 좌타 외야수. 2018년 아칸소 대학을 월드시리즈까지 끌고 간 주역이다(애들리 러치맨이 이끄는 오레곤주립대에게 패배했다). 그러나 커스태드가 전체 2순위에 호명되는 건 상상하지 못했다. 최고 권위자 짐 칼리스(mlb.com)가 "볼티모어가 눈높이를 낮춘다면 후보 중 한 명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지만, 대다수 예측에서 커스태드는 10순위 밖 선수였다(BA 13위).
볼티모어가 핸들을 크게 꺾으면서 뒤따르던 일부 팀들은 긴급히 이동 경로를 바꿨다. 주변 논란에도 불구하고 엘리아스는 커스태드가 처음부터 자신들이 가장 원했던 선수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투수 자원이 두터웠던 이번 드래프트에서 4라운드까지 야수에 올인한 것은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볼티모어가 염두에 둔 고교 우완 닉 비츠코는 24순위 탬파베이가 낚아챘다).
2020 드래프트 볼티모어 지명
1. 헤스턴 커스태드 (외야수) - 2순위
2. 조던 웨스트버그 (유격수) - 30순위
3. 허드슨 해스킨 (외야수) - 39순위
4. 앤서니 서비디오 (유격수) - 74순위
5. 코비 마요 (3루수) - 103순위
6. 카터 바움러 (우투수) - 133순위
대학 선수들의 강세
메이저리그는 선수들의 전성기가 빨라지고 있다(노화 곡선을 통해 20대 후반이면 하향세에 접어드는 것이 확인됐다). 그렇다 보니 선수들의 승격 시기도 빨라지는 추세다. 서비스타임이 걸려있다고 해도 마이너리그에 머무르는 시간을 오래 가져가지 않는다.
이러한 분위기와 맞물려 드래프트에서는 검증된 선수들의 인기가 높아졌다. 각 팀들은 하이리스크/하이리턴 고교 선수보다 폭발력은 떨어져도 안전한 대학 선수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지난해 드래프트에서 고교 선수 비중 28.7%는 역대 가장 낮았다. 그리고 긁을 수 있는 복권이 줄어든 올해도 고교 선수 비중은 29.4%로 역대 두 번째로 낮았다. 전체 7순위까지 고교 선수가 나오지 않은 것은 처음. 4년제 혹은 주니어 칼리지에서 뛴 대학 투수만 66명이 선발됐는데, 이는 5라운드 기준 최다기록이다.
시애틀(6명)과 토론토, 밀워키(이상 5명) 애틀랜타(4명) 양키스(3명)는 단 한 명의 고교 선수도 뽑지 않았다. 지명권을 5개 이상 가진 팀들 중에서도 디트로이트, 캔자스시티, 다저스, 마이애미, 피츠버그, 샌프란시스코, 워싱턴이 데려간 고교 선수는 한 명 뿐이었다(샌프란시스코 대학 선수 6명, 나머지 대학 선수 각 5명). 이번 드래프트에서 호평을 받은 디트로이트와 토론토, 다저스 등은 고교 선수에 관심을 덜 가진 팀들이다.
그렇다면 유행을 거스른 팀은 없었을까. 일단 늘 고교 선수와 사랑에 빠졌던 샌디에이고는 올해도 6명 중 4명이 고교 선수다. 외야수 로버트 하셀(18)은 올해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린 고교 선수로, mlb.com과 BA에서는 16위 유망주였다(mlb.com 조나단 마요와 디애슬레틱 키스 로가 샌디에이고의 하셀 지명을 예상). 2017년 상위 6명을 모두 고교 선수로 지목한 샌디에이고는 작년에도 상위 4명 중 3명이 고교 선수였다.
텍사스가 고교 선수를 많이 데려간 것은 의외였다. 지난해 상위 11명 중 9명이 대학 선수였던 텍사스는 올해 고교 선수 4명, 대학 선수 1명을 뽑았다. 아마추어 스카우팅을 담당하는 킵 패그는 "선수들을 지켜볼 기회가 적었다. 우리 뿐만 아니라 다른 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작성한 자료에 더 초점을 맞춰야 했다"고 말했다.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면 내부 평가가 좋았던 고교 선수들을 데려와서 장기적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이 텍사스의 방침이었다.
최고 투수는 누구
이번 드래프트에서 토켈슨과 더불어 양대 산맥으로 불린 선수는 반더빌트 대학교 오스틴 마틴(21)이다. 토켈슨이 당초 기대했던 대로 1순위 영광을 안은 반면, 마틴은 5순위(토론토)까지 미끄러졌다(예상 순위보다 실제 순위가 더 떨어진 선수는 20순위 밀워키가 지명한 개럿 미첼도 있다). 3순위 마이애미와 4순위 캔자스시티는 마틴을 품을 수 있었지만 과감히 지나쳤다. 캔자스시티는 고교 외야수 잭 빈을 데려갈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런데 에이사 레이시가 남아있자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투수 빅3로 꼽힌 맥스 마이어(마이애미)와 에이사 레이시(캔자스시티) 엠머슨 행콕(시애틀)은 1999년생 동갑내기. 세 선수 모두 자신의 진면목을 알아봐 준 팀으로 향했다(마이애미 캔자스시티 시애틀은 자신들이 고른 세 선수가 이번 드래프트 최고 투수였다고). 마이어와 행콕은 우완, 레이시는 좌완이다.
벌써 마이애미와 계약했다고 알려진 마이어는 스터프는 따라올 선수가 없다. 토너먼트에서 던진 패스트볼 최고구속이 102마일. 슬라이더 역시 이번 드래프트 최고라는 극찬 속에 80점 만점에 70점을 받았다(패스트볼 70점). 70점 이상 구종 두 개를 보유한 투수는 마이어가 유일하며, 구위만 보면 당장 메이저리그에서 뛰어도 이상하지 않다. 다만 마이어는 언더사이즈(183cm 83kg)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가진 무기가 아무리 뛰어나도 내구성이 감당할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대학 시절 별명이 이름(Asa)과 비슷한 '에이스(Ace)'인 레이시도 90마일 후반대 패스트볼과 80마일 중반대 하드 슬라이더가 돋보이는 투수. 시즌이 취소되기 전까지 24이닝 46탈삼진으로, 4경기 피안타율은 0.111에 불과했다. 제구력만 더 다듬는다면 레이시를 놓친 팀들은 후회하게 될 것이다. 캔자스시티는 브래디 싱어, 다니엘 린치, 잭슨 코워와 함께 레이시가 메이저리그에 올라온다면 투수 왕국을 꿈꿔볼 수 있다.
행콕은 작년까지 드래프트 전체 1순위 후보로 거론됐다. 그러나 이번 봄 경기 등판에서 살짝 흔들렸다는 이유(2승 2.75)로 주가가 떨어졌다. 1학년 때 15경기 평균자책점이 5.10이었던 행콕은 기복을 줄이는 것이 관건이다. 90마일 중반대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을 구사. 레퍼토리는 마이어와 레이시보다 다양하다. 제리 디포토 단장은 행콕의 학구열도 마음에 들어했는데,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하는 탐구력은 아마추어 선수들이 갖춰야 할 자세다.
우월한 유전자들
드래프트는 가업을 이어받은 선수들을 살펴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디트로이트가 3라운드에서 뽑은 내야수 트레이 크루스(21)는 호세 크루스 주니어의 아들. 1997년 신인왕 2위였던 호세 크루스 주니어는 메이저리그 12년간 통산 204홈런 1167안타를 기록했다(1997년 신인왕 노마 가르시아파라). 호세 크루스 시니어도 19년간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크루스 가문은 3대 메이저리그 배출 기회를 가지게 됐다.
애리조나가 전체 18순위로 뽑은 브라이스 자비스(22)는 1994-2006년 저니맨으로 활약한 케빈 자비스의 아들(통산 187경기 34승49패 6.03). 아버지와 똑같은 우투좌타로, 지난해 양키스의 37라운드 지명을 거절한 바 있다. 자비스는 체인지업을 갈고닦아 1년 만에 더 좋은 투수로 급성장했다. 전체 23순위로 뽑힌 클리블랜드 카슨 터커(18)는 피츠버그 콜 터커(23)의 동생. 26순위로 오클랜드에 불린 타일러 소더스트롬(18)은 1993년 드래프트 전체 6순위 출신 스티브 소더스트롬(샌프란시스코)의 아들이다.
참고로 휴스턴 카를로스 코레아의 동생 J C 코레아(유격수) 휴스턴 감독 더스티 베이커의 아들 대런 베이커(2루수)는 더 좁아진 바늘구멍을 통과하지 못했다.
기사제공 이창섭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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