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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스코프] 2005년 캔자스시티의 19연패 악몽(06.19)

야구상식

by jungguard 2020. 6. 1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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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사스시티

 

 

1985년 극적으로 미주리주 월드시리즈를 우승한 캔자스시티는 이후 패배의 역사를 써내려갔다. 1994년 파업 시즌이 끝난 뒤로는 8년 연속 5할 승률에 실패했다.

 

8년 연속 5할 승률이 좌절된 2002년은 창단 이래 첫 100패 시즌이었다. 그 해 캔자스시티는 106패 트리오(탬파베이 디트로이트 밀워키) 덕분에 그나마 눈에 덜 띄었다.

 

2003년 캔자스시티는 타선의 힘을 앞세워 830일까지 지구 1위를 달리는 깜짝 선전을 이어갔다. 그러나 끝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고(8379패 지구 3) 이듬해 다시 예전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다시 동네북이 된 2004. 캔자스시티는 팀 간판스타 카를로스 벨트란을 트레이드 했다. 리그 최고의 툴 플레이어였던 벨트란은 시즌 후 FA를 앞두고 있었다. 시즌 초반부터 지구 최하위로 내려앉은 캔자스시티는 붙잡을 이유도 없었고, 여력도 없었다. 이에 트레이드 마감시한까지 기다리지 않고 625일에 벨트란을 보내줬다. 휴스턴, 오클랜드와 3각 트레이드에 합의한 캔자스시티는 3루수 마크 티헨, 포수 존 벅, 우투수 마이크 우드를 받아왔다(셋 중 기대에 부응한 선수는 한 명도 없었다).

 

벨트란을 보내는 것으로 사실상 시즌 포기를 선언. 벨트란의 고별전을 패한 캔자스시티는 그 경기를 비롯해 14경기 13패를 당하는 것으로 벨트란 앓이를 톡톡히 했다. 시즌 104패는 2002100패를 넘어서는 구단 역대 최다패였다.

 

최악의 시즌을 보낸 캔자스시티는 2005년 역시 전망이 어두웠다. 알라드 베어드 단장은 나름대로 전력을 보강. 샌디에이고와 22 트레이드로 외야수 테런스 롱(29)을 받아왔다. 베테랑 포수 베니토 산티아고(39)를 피츠버그에 보내는 대신 유망주 레오 누녜스(23)를 확보(훗날 플로리다 마무리를 맡는 누녜스는 신분 위조가 발각되는 후안 카를로스 오비에도다). 크리스마스 날에는 마운드의 리더가 되어줄 호세 리마(32)1250만 달러 계약에 재회했다(사진). 2003년 캔자스시티에서 834.91(73.1이닝)을 기록한 리마는 2004년 다저스에서 재기에 성공했다(1354.07 170.1이닝).

 

특급 선수 한 명 없이 구성된 로스터. 하지만 모두가 밝은 미래를 꿈꾸는 스프링캠프에서 캔자스시티도 희망을 놓지 않았다. 베어드 단장은 "벨트란을 대신할 선수가 있다고 말하면 새빨간 거짓말일 것이다. 그래도 기대가 되는 선수들은 있다"고 말했으며, 토니 페냐 감독도 "젊은 선수들이 뭔가를 보여주려고 하는 의욕이 넘친다"고 거들었다.

 

늘 그렇듯 현실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현실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냉혹하다. 개막 첫 원정 6연전을 33패로 마친 캔자스시티는 홈 개막전에 4만 명이 넘는 관중들이 모였다. 그러나 만원 관중이 지켜본 시애틀전에서 무기력한 패배를 당했다(28). 8연전을 26패로 끝낸 캔자스시티는 420일 클리블랜드를 상대로 9회말 끝내기 홈런으로 승리했다. 4월의 마지막 승리였다(9연패).

캔자스시티는 5월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클리블랜드). 하지만 다음 9경기 또 18패로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826). 이 과정에서 토니 페냐 감독은 돌연 사의를 표명. "모든 힘을 다 썼다"고 말한 페냐는 성적 부진으로 지친 줄 알았는데, 이혼 소송에 휘말리면서 온전히 팀을 돌볼 수 없는 상황임이 드러났다.

 

감독까지 잃은 캔자스시티는 이리저리 방황했다. 가뜩이나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이 주축이었기 때문에 감독의 빈 자리는 더 크게 느껴졌다. 벤치코치 밥 셰퍼를 임시감독으로 내세운 뒤 서둘러 후임자를 찾아나섰다. 감독 경력을 중요하게 여겼던 수뇌부는 아트 하우, 제리 매뉴얼, 테리 콜린스 등을 뒤로하고 클리블랜드 벤치코치 버디 벨을 새 감독으로 임명했다(벨은 1996-98년 디트로이트, 2000-02년 콜로라도 감독). 캔자스시티가 정식 감독을 지낸 인물을 데려온 것은 1987년 빌리 가드너 이후 처음이었다.

 

벨이 감독으로 부임한 캔자스시티는 대형사고를 쳤다. 벨의 데뷔전이었던 양키스 3연전을 모두 승리한 것. 2002-04년 연속 100승을 넘겼던 양키스는 1차전 케빈 브라운, 2차전 랜디 존슨, 3차전 칼 파바노를 낸 경기에서 모두 패했다. 벨에게 첫 승리를 안겨준 캔자스시티 투수는 자신도 11경기 만에 시즌 첫 승리를 올렸다. 앞선 10경기 64.13으로 불운과 싸웠던 잭 그레인키(5이닝 3실점)였다.

 

캔자스시티는 텍사스와의 시리즈 첫 맞대결도 승리하면서 4연승을 내달렸다. 하지만 다음날 2차전에서 19안타 14득점으로 폭발한 텍사스 화력을 넘지 못했다. 연승이 중단된 경기에서 승리한 텍사스 선발은 박찬호였다(5이닝 6실점).

 

비록 텍사스에게 덜미를 잡혔지만, 캔자스시티는 좋은 분위기를 유지했다. 612일 애리조나전부터 617일 다저스전까지 5연승을 질주. 다저스 3연전도 싹쓸이 한 캔자스시티는 1997년 인터리그가 열린 이후 양키스와 다저스를 상대로 시리즈 완승을 거둔 최초의 팀이 됐다. 감독으로 온 뒤 15경기 11승을 이끈 벨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위기는 항상 방심하는 순간에 찾아온다.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던 캔자스시티는 살짝 높아졌던 콧대가 꺾이고 말았다. 마치 언제 상승세를 달렸냐는 듯 열심히 패배. 5연승이 끊긴 뒤 16경기 214패로 고개를 떨궜다. 7월에 잠시 경쟁력을 보여줬지만, 한여름밤의 악몽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729일 탬파베이전부터 820일 오클랜드전까지 탈출하지 못했던 19연패였다.

 

자신들보다 더 성적이 나쁜 탬파베이에게 충격의 4연패를 당한 것이 시발점. 디펜딩 챔피언 보스턴은 지구 2위 양키스의 추격으로 사정을 봐줄 여유가 없었다. 85일 오클랜드전에서는 8회초 폭투로 결승점을 허용. 경기 의지를 상실한 캔자스시티는 다음 세 경기 연속 두 자릿수 실점(16실점 11실점 13실점)으로 11연패 늪에 빠졌다. 특히 810일 클리블랜드전은 8회까지 72로 앞서고 있었지만, 마무리 마이크 맥두갈이 9회초 77 동점을 헌납하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후속투수 지미 고블이 만루홈런까지 내주면서 9회초에만 무려 11실점을 했다. 이 경기를 비롯해 클리블랜드 3연전을 모두 패한 캔자스시티는 시즌 패배가 승수에 정확히 두 배가 됐다(3876).

199712연패를 넘어 이미 구단 역대 최다 13연패를 경신한 캔자스시티는 이틀간 내린 폭우로 마음을 추스를 시간을 벌었다. 마침 다음 상대는 해볼만한 디트로이트였다(디트로이트 리그 11, 캔자스시티 14). 팽팽하게 전개된 두 팀의 경기는 캔자스시티가 7회말 맷 스테어스의 적시타와 에밀 브라운의 희생플라이로 7-7 동점을 만들었다. 그러나 9회초 암비오릭스 버고스가 결승 2루타를 맞으면서 한 점차 석패를 당했다. 곧바로 열린 더블헤더 2차전도 호세 리마의 9이닝 1실점 역투가 타선의 비협조로 빛을 보지 못했다(캔자스시티는 2회와 7회를 제외한 모든 공격에서 주자가 출루했다).

 

승리한 기분이 어떤지는 잊혀진 지 오래. 하루에 두 번을 패한 캔자스시티는 이제 막 데뷔한 신인 투수를 상대했다. 결과는 311로 패배. 언론에서는 캔자스시티의 16연패보다 캔자스시티를 16연패로 몰아넣은 신인 투수에 관심이 집중됐다. 8이닝 11K 1실점으로 포효한 '' 펠릭스 에르난데스였다.

 

다음날 또 8회말에 결승점을 내주면서 한 점차로 진 캔자스시티는 시애틀 3연전 마지막 경기와 오클랜드 3연전 첫 경기를 내리 패했다. 클리블랜드 벤치코치로 있을 때만 해도 자신의 운명을 예측하지 못했던 벨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우리가 컨텐딩 팀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나쁜 팀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며 당혹스러워했다. 5이닝 4실점 패전을 안은 리마는 "내 평생 가장 힘든 시기"라고 전했다.

 

메이저리그에서 19연패 팀이 나온 것은 1988년 볼티모어 이후 처음. 1988년 볼티모어는 개막 첫 21경기에서 21연패를 당하는 치욕스러운 흑역사를 남겼다.

 

볼티모어의 기록에 바짝 다가간 캔자스시티는 821일 오클랜드전도 3회말 선취점을 내줬다. 하지만 4회초 공격에서 테런스 롱과 마이크 스위니(사진)의 연속 안타로 잡은 무사 1,2루에서 후속 두 타자가 주자 두 명을 불러들여 경기를 뒤집었다. 선발 마이크 우드가 5이닝 1실점으로 버틴 캔자스시티는 연패 기간 내내 속을 썩였던 불펜이 남은 4이닝을 간신히 막아 21 승리를 지켰다. 19연패가 마침내 마침표를 찍은 순간. 기다렸다는 듯 리마가 샴페인을 터뜨린 캔자스시티는 이 날만큼은 월드시리즈 우승팀이 됐다.

 

천신만고 끝에 19연패를 벗어난 캔자스시티는 남은 42경기 1824패를 기록. 5할 승률은 아니었지만 약 3주간 지속된 끔찍한 사태는 반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연패 상처는 아물지 않았는데, 시즌 106패로 메이저리그 전체 꼴찌 수모를 겪어야 했다. 106패는 아직도 캔자스시티 한 시즌 최다패 기록이다.

 

야속하게도 기억은 좋았을 때보다 나빴을 때 더 선명하다. 암흑기가 정점을 찍은 2005년 캔자스시티는 아직도 회자되는 팀 중 하나다.

 

한편, 2005년 캔자스시티가 속이 쓰린 이유는 또 있다. 캔자스시티는 고통 속에 2006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었다. 캔자스시티가 처음으로 가져본 전체 1순위 지명권이었다. 이 드래프트에서 캔자스시티는 재수생 루크 호체이버를 지명했다. 그러면서 클레이튼 커쇼(7순위) 팀 린스컴(10순위) 맥스 슈어저(11순위)를 놓쳤다.

 

기사제공 이창섭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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