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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MLB] 짜릿한 드래프트 하위 라운드 대박들(06.26)

야구상식

by jungguard 2020. 6. 2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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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뉴욕양키스 전설들

 

1965년 메이저리그 아마추어 드래프트가 시작된 이래 드래프트를 받고 입단해 명예의 전당에 오른 선수는 42명이다(베테랑위원회 헌액 선수 제외).

 

전체 1순위 지명자인 켄 그리피 주니어(1987)와 치퍼 존스(1990)를 포함해 1라운드 지명 선수는 16(38%)으로 생각보다는 많지 않다.

 

*1라운드 지명 명예의 전당 선수 : 레지 잭슨, 톰 시버(1966) 칼튼 피스크(1967) 짐 라이스(1971) 로빈 욘트, 데이브 윈필드(1973) 폴 몰리터(1977) 커비 퍼켓(1982) 배리 라킨(1985) 켄 그리피 주니어, 크렉 비지오(1987) 프랭크 토머스(1989) 치퍼 존스, 마이크 무시나(1990) 데릭 지터(1992) 로이 할러데이(1995)

 

하지만 7명의 2라운드 선수들인 자니 벤치(1965) 조지 브렛, 마이크 슈미트(1971) 칼 립켄 주니어(1978) 그렉 매덕스, 톰 글래빈(1984) 랜디 존슨(1985)까지 포함하면 23명으로 절반을 넘어선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드래프트 선수 중 가장 특이한 사례는 톰 시버다. 시버는 1966년 드래프트에서 애틀랜타의 1라운드 19순위 지명을 받았다. 애틀랜타는 53500달러를 제시했고 시버도 이에 동의했다(1년 전 다저스는 시버를 10라운드에서 뽑았지만, 시버가 5만 달러를 달라고 하자 거절했다).

 

하지만 애틀랜타가 대학리그 기간 중에는 계약할 수 없다는 조항을 어기면서 애틀랜타의 지명이 취소됐다. 커미셔너의 직권에 따라 시버는 FA 선수가 됐고, 시버에게 4만 달러 이상 보너스를 줄 의사가 있다고 밝힌 필라델피아 필리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뉴욕 메츠 세 팀이 제비뽑기를 했다. 커미셔너의 중절모 속 유일한 동그라미 제비를 고른 팀은 메츠였다.

 

두 번째로 특이한 경우는 재키 로빈슨, 마리아노 리베라와 함께 42번을 영구결번으로 가지고 있는 브루스 수터다. 수터는 고교 졸업반 때인 1970년 워싱턴 세네터스(현 미네소타 트윈스)로부터 21라운드 지명을 받았다. 하지만 이를 거절하고 올드도미넌대학(저스틴 벌랜더)에 진학했다. 그리고 시카고 컵스가 다음 드래프트에 나오기 전에 수터를 FA 계약으로 데려갔다.

 

드래프트에 나서는 팀들은 1라운드 또는 자신들이 가진 첫 번째 지명권에 사활을 건다. NBA NFL 등의 다른 스포츠 만큼은 아니더라도 순위가 높을수록 성공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현역 선수 중 명예의 전당이 유력 또는 확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클레이튼 커쇼(7순위) 저스틴 벌랜더(2순위) 맥스 슈어저(11순위) 잭 그레인키(6순위) 투수 '4' 역시 모두 1라운드 선수들이다.

 

2008년 드래프트에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버스터 포지를 전체 5순위로 뽑았고 포지와 함께 세 번의 월드시리즈 우승(2010 2012 2014)을 차지했다. 그해 드래프트에 나서기 위해 샌프란시스코가 리포트를 정리한 선수들은 800명에 달했다.

 

하지만 하위 라운드에서 전혀 생각하지 못한 잭팟이 터지기도 한다. 아래는 명예의 전당에 오른 드래프트 선수 중 10라운드 이하에서 뽑힌 7명의 선수들이다.

 

62라운드 - 마이크 피아자(1988)

 

22라운드 - 존 스몰츠(1985)

 

20라운드 - 라인 샌버그(1978)

 

13라운드 - 짐 토미(1989)

 

12라운드 - 놀란 라이언(1965)

 

11라운드 - 트레버 호프먼(1989)

 

11라운드 - 안드레 도슨(1975)

 

마이크 피아자가 '아버지 찬스'를 쓴 일화는 유명하다. 디트로이트는 1985년 드래프트에서 존 스몰츠를 잘 뽑아놓고 애틀랜타로 넘겨줬다. 스몰츠는 2라운드 선수들인 매덕스와 글래빈, 전체 1순위 지명자인 치퍼 존스와 함께 1990년대 애틀랜타를 대표해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9개의 골드글러브와 7개의 실버슬러거를 차지했으며 로저스 혼스비와 함께 리그 홈런왕에 오른 역대 두 명뿐인 2루수인 라인 샌버그는 존 스몰츠의 타자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고교 시절 최고의 쿼터백 8명 중 한 명이었던 샌버그는 장학금을 받고 워싱턴주립대에 진학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1978년 드래프트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20라운드 지명을 받자 야구를 선택했다.

 

그렇게 필라델피아는 샌버그를 잘 뽑아 놓고 198222살의 샌버그를 컵스로 넘겼다. 샌버그의 포지션은 3루와 2루였는데 3루에는 마이크 슈미트(31) 2루에는 매니 트리요(30)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슈미트는 1980년에 이어 1981년에도 리그 MVP, 골드글러브, 실버슬러거를 석권했고, 트리요도 1981년 골드글러브와 실버슬러거를 모두 따냈다. 샌버그는 1997년 은퇴할 때까지 컵스에서만 뛰었고 우승반지 없이 은퇴하는 대신 영구결번(23)을 선물 받았다.

 

현역 선수 중 명예의 전당을 확정지어 놓고 있는 10라운드 이하 지명 선수는 앨버트 푸홀스다.

 

푸홀스의 가족은 푸홀스가 16살 때인 1996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하지만 뉴욕의 삭막함을 견디지 못했다. 심지어 푸홀스는 길에서 사람이 총을 맞고 숨지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다.

 

그래서 옮긴 곳이 당시 도미니카 이주민의 집단 거주지가 있던 미주리주 인디펜덴스(캔자스시티 근교)였다. 푸홀스가 처음 직관한 메이저리그 경기도 캔자스시티 코프먼스타디움에서 열린 캔자스시티 로열스와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의 경기였다.

 

푸홀스가 1999년 드래프트에 나왔을 때 푸홀스라는 선수를 자기들만 알고 있다고 생각한 캔자스시티는 푸홀스를 15라운드에서 뽑기로 했다. 하지만 이는 대단한 착각이었다. 같은 미주리주 팀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푸홀스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세인트루이스는 캔자스시티에 두 발 앞선 13라운드에서 푸홀스를 지명했다(미주리주 두 팀 외에도 탬파베이 데블레이스가 푸홀스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탬파베이는 스카우트가 올린 리포트를 무시했다).

 

한편 세인트루이스의 하위 라운드 대박은 제프 루나우가 스카우팅 디렉터로 있던 5(2007~2011) 동안 정점에 올랐다. 맷 카펜터를 13라운드, 트레버 로젠탈을 21라운드, 케빈 시그리스트를 41라운드에서 뽑은 루나우는 휴스턴으로 건너가 탱킹의 신화를 만들어내는 듯했지만 사인 훔치기 스캔들로 퇴출됐다.

 

1996년부터 2000년까지 네 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양키스는 드래프트와 자체 생산으로 일어선 팀이었다. 양키스의 '코어(Core) 4'가 그 후 등장한 다른 팀의 코어 선수들과 다른 점은 상위 라운드 선수들만 있지 않다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는 맷 케인(200225순위) 팀 린스컴(200610순위) 매디슨 범가너(200710순위) 버스터 포지(20085순위) 네 명이 모두 1라운드 선수들이고, 시카고 컵스 또한 2016년 우승 핵심 멤버 중 드래프트 선수들인 하비에르 바에스(20119순위) 크리스 브라이언트(20132순위) 카일 슈와버(20144순위)1라운드 선수들이었던 반면, 양키스는 데릭 지터가 유일한 1라운드 선수다.

 

파나마 출신인 마리아노 리베라는 대부분의 국제 계약 선수들이 만 16세 생일이 지나자마자 계약하는 것과 달리 만 20세 때 양키스와 계약했다. 1991년 전체 1순위로 뽑은 브라이언 테일러에게 155만 달러를 쏜 양키스가 리베라에게 준 돈은 2000달러였다.

 

그리고 양키스는 1990년 드래프트에서 앤디 페티트를 22라운드에서, 푸에르토리코 출신 호르헤 포사다를 24라운드에서 뽑았다(한편 같은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10순위로 뽑은 칼 에버렛은 1992년 확장 드래프트 때 플로리다 말린스에 넘겨줬다).

 

 

 

 

둘은 지금은 사라진 '드래프트 & 팔로우'의 성공 사례였다. 당시는 하위 라운드에서 지명을 받은 고교 선수들은 지명 팀과 바로 계약하지 않는 대신 주니어 칼리지 또는 커뮤니티 칼리지에 진학해 자신의 실력을 증명한 다음 지명 팀과 계약하는 것이 가능했다. 계약 마감 시한이 다음 드래프트 일주일 전이었기 때문이다(, 4년제 대학에 진학하면 이 대상이 될 수 없다).

 

이에 페티트는 처음 받은 제안의 두 배인 8만 달러, 포사다 또한 최초의 제안보다 더 좋은 조건이 3만 달러에 양키스와 계약할 수 있었다. 2000년 오클랜드의 19라운드 지명을 받았던 리치 하든 역시 같은 경우인데, 최근 하위 라운드 대박 선수가 사라진 것은 드래프트 & 팔로우 제도가 2006년을 마지막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올해 메이저리그 드래프트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인한 스카우팅의 어려움과 팀의 예산 감축에 따라 40라운드에서 5라운드로 축소됐다. 야구를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 떠난 선수들 중에는 하위 라운드의 기적이 될 수 있었던 선수들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최고의 하위 라운드 선수들

 

9라운드 : 제이콥 디그롬, 프레드 맥그리프

 

10라운드 : 브래디 앤더슨

 

11라운드 : 트레버 호프먼, 안드레 도슨

 

12라운드 : 놀란 라이언

 

13라운드 : 앨버트 푸홀스, 짐 토미

 

15라운드 : 호세 칸세코

 

17라운드 : 케니 로프턴

 

18라운드 : 마이크 카메론

 

19라운드 : 브렛 세이버하겐, 돈 매팅리, 조시 헤이더

 

20라운드 : 라인 샌버그, 제프 켄트, JD 마르티네스

 

21라운드 : 브루스 수터

 

22라운드 : 존 스몰츠, 앤디 페티트, 제이슨 베이

 

23라운드 : 로이 오스왈트

 

24라운드 : 호르헤 포사다, 마크 그레이스

 

29라운드 : 켄 그리피 시니어

 

31라운드 : 케빈 키어마이어, 트래비스 해프너

 

32라운드 : 롭 넨, 케빈 필라

 

36라운드 : 라울 이바네스

 

38라운드 : 마크 벌리, 스캇 실즈

 

39라운드 : 케니 로저스

 

42라운드 : 키스 에르난데스

 

43라운드 : 에릭 영, 올랜도 허드슨

 

48라운드 : 브래드 아스무스

 

50라운드 : 제로드 다이슨

 

53라운드 : 마커스 자일스

 

58라운드 : 제프 코나인

62라운드 : 마이크 피아자

 

기사제공 김형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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