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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스코프] 야시엘 푸이그의 멀어지는 2020시즌(07.30)

야구상식

by jungguard 2020. 7. 3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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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시엘 푸이그

 

 

야시엘 푸이그(29)의 고독한 시간이 길어질 전망이다.

 

겨우내 팀을 찾지 못한 푸이그는 지난 15일 겨우 소속팀을 구했다. 통산 맞대결 32경기에서 .327 .387 .564의 성적을 안겨준 애틀랜타였다(애틀랜타는 푸이그에게 커리어 처음이자 유일한 만루홈런을 선물한 팀이기도 하다). 닉 마카키스가 시즌 불참(옵트아웃)을 선언한 애틀랜타는 전력 보강 차원에서 푸이그와 1년 계약을 맺었다.

 

푸이그는 자존심 회복의 기회를 잡은 듯 했다. FA 시장에서 홀대를 받았던 설움을 날려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공식 발표가 나오지 않았다. 메디컬 테스트와 코로나19 검사가 남은 것이 이유였는데, 안타깝게도 푸이그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다행히 몸에 특별한 증상은 없다고). 코로나19의 심각성을 호소한 푸이그는 여전히 소속팀이 없는 FA 상태로 남아있다.

 

데뷔 초 받았던 기대감을 떠올리면 푸이그의 달라진 입지는 어색하기만 하다.

 

20126월 쿠바 선수 역대 최고 계약(74200)을 받고 다저스에 입단한 푸이그는 이듬해 신인왕 2위에 오르는 것으로 성공적인 출발을 했다(104경기 .319 .391 .534 19홈런). 정제되지 않은 모습이 투박했지만 매력적이었던 푸이그는 많은 이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데뷔 2년차 징크스도 비켜간 2014시즌엔 리그 올스타로 도약(.296 .382 .480 16홈런). 특히 승리기여도(fWAR) 5.5는 다저스 야수 1위였다(핸리 라미레스&애드리안 곤살레스 3.7). 이때만 해도 푸이그는 미워할 수 없는 악동처럼 보였다.

 

문제는 푸이그가 기술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더 성장하지 못한 것이다. 햄스트링 부상과 부진으로 2015시즌을 망친 데 이어(79경기 .255 .322 .436 11홈런) 2016시즌도 상당 경기를 놓쳤다(104경기 .263 .323 .416 11홈런). 무엇보다 커리어 초반부터 지적됐던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팀 분위기를 해치는 행동들을 수없이 했으며, 그로 인해 동료들의 반감을 샀다. 그렇게 푸이그는 미워할 수밖에 없는 악동으로 전락했다.

 

201812, 푸이그는 다저스와 불편한 동거를 끝냈다. 다저스는 푸이그를 신시내티로 보냈다. 신시내티는 타자친화적 구장을 홈으로 쓰는 팀. 여기에 FA라는 동기부여가 있었기 때문에 보란듯이 맹활약을 펼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푸이그의 성적은 미지근했다(100경기 .252 .302 .475 22홈런). 푸이그가 신시내티에서 가장 뜨거웠던 순간은 피츠버그와 가진 두 차례 벤치 클리어링 때였다. 신시내티에서도 자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푸이그는, 결국 트레이드 마감시한에 맞춰 또 다른 팀으로 이적했다. 푸이그의 첫 아메리칸리그 팀 클리블랜드였다. 당시 클리블랜드는 돌발행동으로 골칫거리였던 트레버 바우어를 신시내티로 보냈다(샌디에이고가 포함된 3각 트레이드로, 프란밀 레이에스와 로건 앨런 등이 클리블랜드로 건너갔다).

포스트시즌을 경쟁하는 팀으로 왔지만, 푸이그의 의욕은 되살아나지 않았다. 푸이그는 817일 양키스전 홈런을 끝으로, 시즌 마지막 36경기에서 홈런을 하나도 때려내지 못했다(49경기 .297 .377 .423 2홈런). 925일 복귀전 첫 두 타석에서 만루홈런과 스리런홈런을 날린 호세 라미레스를 보고 감탄사만 연발했을 뿐이었다.

 

홈런만 치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98일 미네소타전에서는 또 무성의한 플레이로 차가운 눈총을 받았다. 푸이그는 4회 초 두 번째 타석에서 친 땅볼이 상대 투수 제이크 오도리지에게 잡히자 곧장 덕아웃으로 들어갔다(푸이그가 1루로 달리지 않은 것을 목격한 오도리지는 어리둥절해하며 1루 베이스를 직접 터치했다). 테리 프랑코나 감독, 카를로스 산타나는 덕아웃에서 푸이그를 붙들고 이야기를 나눴다. 필라델피아 시절 연패 중 비디오 게임을 하고 있던 동료들을 책망한 바 있던 산타나는 나태한 플레이를 용납하지 못하는 선수. 산타나로부터 "매 경기 모든 플레이에 100% 최선을 다하라"는 조언을 들었던 푸이그는 경기 후 감독 동료들에게 사과를 해야만 했다.

 

푸이그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양치기 소년의 약속이었다. 푸이그는 과거에도 잘못과 반성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지난해 워싱턴의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각 구단들은 팀 분위기의 중요성을 재차 깨달았다. 이 현상은 결코 푸이그에게 유리하지 않았다. 푸이그는 생산력 송구력 기동력을 갖춘 선수였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내부의 적이기도 했다.

 

그나마 적극적으로 달려든 팀은 마이애미였다. 쿠바 이주민들이 많은 마이애미는 푸이그와 궁합이 맞는 팀이었다. 푸이그는 은사 돈 매팅리가 감독으로 있는 마이애미에서 좀 더 편안하게 야구를 할 수 있었다. 마이애미도 푸이그를 통해 팀을 강화하는 동시에 관중 동원력을 높일 수 있었다. 하지만 푸이그가 제안했던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요구하면서 협상은 성사되지 않았다. 이후 겨울을 그대로 지나보낸 푸이그는 샌프란시스코 보스턴 볼티모어 등 소문만 무성했다. 이에 한 인터뷰에서는 "내년을 희망하고 있다. 올해는 야구를 생각할 상황이 아니다"는 심정을 밝히기도 했다.

 

푸이그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그의 막무가내식 태도다. 단순히 경기 중 허슬 부족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푸이그는 열정적인 플레이를 해도 과할 때가 많았다. 무리한 송구, 무리한 베이스런닝으로 찬물을 끼얹은 장면이 여러 번 연출됐다.

 

팀 훈련에 지각하는 건 다반사였고, 코치들의 조언을 무시한다는 증언도 있었다. 다저스 전담 앤디 맥컬로우(LA 타임스)에 의하면 푸이그는 외야 코치 조지 롬바드가 보는 앞에서 수비 카드를 찢어 바닥에 버렸다고 한다. 클레이튼 커쇼와 잭 그레인키는 푸이그의 무례함에 눈살을 찌푸렸고, 저스틴 터너하고도 불화설이 나돌았다. 항상 자기 마음대로인 사춘기 소년을 환영하는 동료는 그리 많지 않았다.

 

애틀랜타와 계약 소식이 전해졌을 때도 가장 우려스러웠던 건 그의 성숙하지 못한 됨됨이였다. 나쁜 선수는 아니었지만, 나밖에 모르는 선수였다. 언제든지 충돌할 여지가 있었고, 어린 선수들에게 안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로날드 아쿠냐, 아지 알비스 등 어린 선수들이 주축인 애틀랜타라서 더 경계했다). 한편 푸이그 영입이 미뤄진 애틀랜타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됐던 프레디 프리먼이 복귀하면서 한 숨 돌렸다.

 

푸이그가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오래 이어가려면 사고뭉치 이미지는 반드시 벗어내야 한다. 출중한 재능에도 불구하고 성격 때문에 일찍 사라진 선수들이 종종 있었다.

 

대표적으로 2003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 델몬 영, 다저스 선배 밀튼 브래들리가 해당된다. 주심에게 방망이를 던져 트리플A 인터내셔널리그 역사상 가장 무거운 징계(50경기 출장 정지)를 받았던 영은 경기장 밖에서도 난동을 부려 체포된 전력이 있다. 역시 화를 참지 못했던 브래들리도 사고 치는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브래들리는 지금이라면 더 큰 징계가 떨어졌을 가정 폭력 사건도 일으킨 적이 있었다.

 

푸이그는 간혹 메이저리그 야구가 너무 어렵다는 말을 했다. 어린 시절 해왔던 즐거운 야구가 아니라 지켜야 할 것들이 지나치게 많다고 토로했다. 그렇다고 해도 이 변명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야구는 혼자서 하는 스포츠가 아니며, 푸이그는 이제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될 어른이다. 환경보다 사람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 맞다.

 

과연 푸이그는 새로운 팀을 만날 수 있을까. 몸 관리만 잘한다면 기회는 또 찾아올 것이다. ,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힘들게 잡은 기회는 허무하게 날아갈 것이다.

 

기사제공 이창섭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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